봉사의 마지막이 가까워짐에 따라 그리스도의 일하시는 방법에 변화가 생겼다. 그분께서는 지금까지 흥분을 일으키거나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을 피하려고 노력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인기가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열광적으로 불타오르는 것처럼 보이자 백성들의 경의를 사양하고 이곳저곳으로 빨리 왕래하셨다. 그분께서는 여러 차례 아무도 당신을 그리스도라고 선언하지 말도록 명령하셨다. DA 485.1
초막절에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신 여행은 신속하고도 비밀리에 행해졌다. 그분의 형제들이 자신을 메시야로서 공적으로 나타내도록 강권하였을 때에 그분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않았다”(요 7:6)고 대답하셨다. 그분께서는 다른 사람의 주목을 끌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가셨으며,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도성에 들어가셨으며 대중의 존경도 받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마지막 여행은 그렇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제사장들과 랍비들이 악의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잠시 동안 예루살렘을 떠나 계셨다. 그러나 이제 그분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하셨는데 가장 대중적인 방식으로 순회로를 따라 여행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오심을 알리기 위하여 사자를 앞서 보내셨는데 이는 그분께서 전에 결코 하신 적이 없던 일이다. 그분께서는 큰 희생을 치르실 현장으로 나아가고 계셨는데, 이 희생에 백성들의 관심이 돌려져야 하였다. DA 485.2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요 3:14)라.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의 눈이 그들을 치료하기 위하여 세워진 상징물인, 높이 들린 뱀을 쳐다보아야 되었던 것처럼 모든 사람의 눈은 잃어버린 세계에 구원을 가져다 준 희생 제물인 그리스도에게로 이끌려야 한다. DA 485.3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에게, 초막절에 자신을 백성들에게 공공연하게 나타내도록 권유하게 된 것은 메시야의 사업에 대하여 그릇된 개념을 가졌기 때문이며 예수님의 신적 품성에 대하여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었다. 이제 이와 똑같은 정신으로 제자들은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는 것을 막으려고 하였다. 제자들은 그 곳에서 어떤 일이 그분에게 일어날 것이라는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종교 지도자들의 치명적인 적개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 주님으로 하여금 그 곳에 가는 것을 단념하도록 기꺼이 권유하였다. DA 485.4
사랑하는 제자들의 공포와 실망 그리고 불신을 거스르고 당신의 길을 밀고 나아가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고민과 절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제자들을 인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사단은 인자를 유혹하기 위하여 가까이에 있었다. 왜 이제 그분은 죽음이 확실한데 예루살렘으로 가셔야 하는가? 그분의 주위에는 생명의 양식에 굶주리는 영혼들이 있었다. 사방에는 고통하는 사람들이 그분의 치유의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의 은혜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사업은 이제 막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청춘의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왜 은혜의 말씀과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세계의 넓은 분야로 나아가지 않는가? 왜 어둠과 슬픔에 싸인 무수한 사람들에게 광명과 즐거움을 주는 기쁨을 맛보지 않는가? 어찌하여 믿음이 아주 약하고 이해력이 매우 둔하고 행동하는 데 그처럼 느린 제자들에게 추수를 맡기는가? 겨우 요람기에 있는 사업을 그대로 두고 왜 죽음에 직면하려고 하는가? 광야에서 유혹하던 원수는 지금 무섭고도 교활한 유혹으로 그리스도를 맹렬히 공격하였다. 만약 예수께서 한순간이라도 굴복하고, 자신을 구원하기 위하여 가장 사소한 점에 있어서라도 행로를 변경하셨더라면 사단의 세력은 승리하였을 것이며 세상은 잃어버림을 당했을 것이다. DA 486.1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셨다. 그분의 생애의 유일한 법은 아버지의 뜻이었다. 그분께서 소년 시절에 성전에 올라가셨을 때에 마리아에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 2:49)라고 말씀하셨다. 가나에서 마리아가, 그분께 이적의 능력을 나타내기를 원하였을 때에 그분은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요 2:4)라고 대답하셨다. 그분의 형제들이 그분에게 절기에 참석하도록 권유했을 때에도 그분께서는 같은 말씀으로 대답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 계획 가운데 사람들의 죄를 위하여 그분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쳐야 할 시간은 정해져 있었으며 그 시간은 곧 올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실패하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으셨다. 그분의 발걸음은 원수들이 당신의 목숨을 빼앗으려고 오랫동안 음모하고 있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이제 그분께서는 생명을 버리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박해와 거절과 정죄와 죽음으로 나아가기로 굳게 결심하였다. DA 486.2
그리고 그분께서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저희가 가서 예수를 위하여 예비하려고 사마리아의 한 촌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그분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은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극히 증오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더 좋아하시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만약 그분께서 그리심산의 성전과 예배를 회복하기 위하여 오셨더라면 그들은 그분을 즐겁게 영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고 있었으므로 예수를 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에서 주신 가장 큰 선물을 문간에서 쫓아내고 있다는 것을 거의 깨닫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당신을 영접하도록 사람들을 초청하셨으며, 당신이 그들에게 가까이 나아가 가장 풍성한 축복을 베풀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에게 베풀어진 모든 후의에 대하여 더 귀중한 은혜로 보답하셨다. 그러나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들이 지닌 편견과 고집 때문에 모든 축복을 잃어버렸다. DA 486.3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그 곳에 간 야고보와 요한은 저희 주님을 멸시하는 것을 보자 몹시 분노하였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친히 사마리아 사람들을 찾아가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마리아인들이 그처럼 그분을 무례하게 취급하자 분노로 가득 찼다. 제자들은 얼마 전에 변화산에서 그분과 같이 있었는데,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영화롭게 하셨으며 모세와 엘리야도 그분을 존경하는 것을 보았다. 제자들은 사마리아인들이 행한 불명예스러운 일에 대하여 현저한 형벌을 내리지 않고는 지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DA 487.1
제자들은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들이 그분에게 하룻밤을 유숙하는 것까지도 거절하였다는 백성들의 말을 그분께 보고하였다. 그들은 백성들이 예수께 무서운 과오를 범했다고 생각했으며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죽인 갈멜산을 멀리 바라보며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 좇아내려 저희를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저희의 말을 듣고 슬픔에 잠기시는 예수님을 보고 놀랐으며, 그리고 더욱 놀란 것은 그분의 다음과 같은 책망의 말씀이 저희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가라사대 너희는 무슨 정신으로 말하는지 모르는구나 인자는 사람의 생명을 멸하러 온 것이 아니요 구하러 왔노라”(간이 국한문 성서 눅 9:55, 56 난외 참조). 그런 후 그분은 다른 촌으로 가셨다. DA 487.2
당신을 받아들이도록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명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양심을 강요하는 것은 사단과 그의 정신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의를 위하여 열렬히 일한다는 핑계 아래, 악한 천사들과 동맹한 사람들은 저희 동료들을 저들의 종교적 이념으로 개종시키기 위하여 그들에게 고통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자비심을 보여 주신다. 곧 사랑을 나타내심으로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하신다. 그분께서는 영혼 속에 어떤 경쟁자도 허락하지 않으며 부분적인 봉사도 받지 않으신다. 다만 그분은 사랑의 강권으로 말미암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 즉 자발적인 봉사를 원하신다. 우리의 사업을 옳게 평가하지 않거나 우리의 이상에 반대되게 행동하는 사람들을 해치고 멸하려는 경향보다 우리가 사단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다는 더 결정적인 증거는 있을 수 없다. DA 487.3
육체와 심령과 정신을 지닌 각 사람은 다 하나님의 소유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만민을 구속하기 위하여 죽으셨다. 종교적 편협심으로 말미암아 구주께서 보혈로 사신 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보다 하나님께 더 불쾌한 일은 없다. DA 488.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막 10:1)셨다. DA 488.2
그리스도께서는 수개월에 걸친 마지막 봉사의 상당 부분을 유대로부터 “멀리 요단 편에 있는” 베뢰아 지방에서 보내셨다. 이곳에서는 많은 무리들이 그분의 초기 봉사에서처럼 그분의 주위에 모여들었으며, 그분이 이전에 가르치신 많은 교훈들이 반복되었다. DA 488.3
그분께서는 열두 사람을 보낸 것처럼 “달리 칠십 인을 세우사 친히 가시려는 각 동 각 처로 둘씩 앞서 보내”(눅 10:1)셨다. 이 제자들은 일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기 위하여 얼마 동안 그분과 함께 있었다. 열두 제자들이 처음으로 독립된 사명을 띠고 파송되었을 때 다른 제자들은 갈릴리 전역을 여행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였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분과 친밀히 교제할 수 있는 특권을 얻고 직접 개인적인 교훈을 받았다. 이제 이 큰 무리 역시 개별적인 사명을 띠고 나아갈 것이었다. DA 488.4
칠십 인에게 지시한 내용은 열두 제자에게 주셨던 것과 같으나 이방이나 사마리아의 도성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명령은 칠십 인에게는 주지 않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방금 사마리아인에게 거절을 당하셨지만 사마리아인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다. 칠십 인들이 그분의 이름으로 나아갔을 때에 그들은 먼저 사마리아의 도시들을 방문하였다. DA 488.5
구주께서 친히 사마리아를 방문하신 일과 후에 선한 사마리아인을 칭찬하신 일 그리고 병고침을 받은 열 사람 중에서 유독 감사에 넘치는 사마리아인 문둥병자만이 그리스도에게 돌아와 감사를 드린 일 등은 제자들에게 아주 의미 깊은 일이었다. 이 교훈은 제자들의 마음 깊이 스며들었다. 그분께서 승천하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명을 위임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더불어 사마리아는 제자들이 첫째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가르침은 그들로 하여금 이 사명을 성취시키도록 준비시켰다. 제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사마리아에 갔을 때에 백성들이 기쁨으로 영접하는 것을 보았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신 말씀과 그분이 저희 나라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 사마리아인들은, 그분을 거칠게 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저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심을 보고 마음이 끌렸다. 그분께서 승천하신 후에 사마리아인들은 구주의 사신들을 환영했으며, 제자들은 한때 저희의 가장 큰 원수였던 사람들 가운데서 귀중한 수확을 거두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사 42:3; 마 12:21). DA 488.6
칠십 인을 보내실 때에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명하신 것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 머물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너희 동네에서 우리 발에 묻은 먼지도 너희에게 떨어 버리노라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하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울분이 그 동기가 되거나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기별이나 그분의 사신들을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를 보여 주기 위하여 행할 것이었다. 주님의 종들을 거절하는 것은 그리스도 자신을 거절하는 것이다. DA 489.1
예수께서 다시 “그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에 그분은 그처럼 많은 봉사의 시간을 보냈던 갈릴리 마을들을 회상하셨다. 마음 깊이 슬퍼하는 어조로 그분께서는 큰소리로 말씀하셨다.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DA 489.2
갈릴리 바다 근방에 있는 분주한 마을들에 하늘의 가장 귀중한 축복들이 값없이 제공되었다. 생명의 왕께서 날마다 그들 가운데 출입하셨다. 선지자와 왕들이 그토록 보기를 원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구세주의 발아래 모인 회중에게 비추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선물을 거절하였다. DA 489.3
매우 신중한 체하면서 랍비들은, 이 새로운 선생이 가르치는 새 교리를 받아들이지 말도록 백성들에게 경고하였다. 그 까닭은 그분의 이론과 행습들이 조상들의 가르침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고 노력하는 대신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르치는 것을 믿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높이는 대신에 제사장들과 관원들을 존경하였으며 그들 자신의 유전을 지키려고 진리를 거역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깊은 인상을 받고 거의 설복되었지만 저희가 깨달은 대로 행하지 않았으므로 그리스도의 편에 계수함을 받지 못하였다. 사단은 빛이 어둠처럼 보일 때까지 그의 유혹을 제시하였다. 이리하여 많은 사람들은 영혼의 구원을 확증할 수 있는 진리를 거절하였다. DA 489.4
참된 증인은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계 3:20)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혹은 그분의 사자를 통하여 주어진 모든 경고와 책망과 탄원은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두드림이다. 들어가기를 간청하는 음성은 예수의 음성이다. 두드릴 때마다 그것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열려는 마음은 점점 더 약해진다. 오늘 무시당했다면 성령의 감화는 내일은 오늘처럼 강력하지 못할 것이다. 심령의 감수성은 점점 둔해져서 인생의 짧음과 내세의 위대한 영원을 잊어버리는 무서운 무감각에 빠지게 된다. 심판 때에 우리가 정죄 받게 되는 것은 오류 가운데 빠져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요 무엇이 진리인지 배울 수 있도록 하늘에서 주신 기회를 등한히 한 사실 때문일 것이다. DA 489.5
칠십 인들도 사도들처럼 저희의 사명의 증거로서 초자연적인 권능을 부여받았다. 그들은 일이 끝나자 기쁨으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라고 말하였다. 예수께서는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대답하셨다. DA 490.1
과거와 미래의 광경이 예수님의 마음에 떠올랐다. 그분께서는 하늘 처소에서 처음으로 쫓겨 내려오는 루시벨을 보셨다. 그분께서는 기만자의 정체가 온 세계들 앞에 폭로될 당신의 고민의 장면을 내다보셨다. 그분은 사단이 선동하려던 참소와 기만과 허식의 위험이 하늘에서 영원히 없어지고 잃어버린 인류의 구속이 영원히 확실하게 되었음을 선언하는 “다 이루었다”(요 19:30)는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DA 490.2
갈바리의 십자가, 그 고통과 수치 저 너머에서 예수께서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그의 반역으로 말미암아 매우 오랫동안 훼손되었던 이 땅에서 마침내 멸망당하게 될 그 큰 최후의 날을 내다보셨다. 예수께서는 죄악의 일이 영원히 끝나고 하늘과 땅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로 가득 차게 되는 것을 보셨다. DA 490.3
이제부터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사단을 정복당한 원수로서 바라볼 것이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을 위하여 승리를 얻으실 것이었는데, 그분은 이 승리를 그들이 그들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를 원하셨다.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고 말씀하셨다. DA 490.4
전능하신 성령의 권능은 죄를 참회하는 모든 영혼의 방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뉘우치고 믿음으로 당신의 보호하심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한 사람도 원수의 권세 아래 들어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구주께서는 시험받아 연단된 당신의 자녀들 곁에 계신다. 실패와 손실과 불가능과 패배 같은 것들은 예수와 같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분을 통하여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유혹과 시련이 닥쳐 올 때에 모든 어려움을 바로 잡으려고 기다리지 말고 그대를 도와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 DA 490.5
사단의 능력에 대하여 너무 많이 생각하고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그들은 저희 원수에 대하여 생각하고, 그에 관하여 기도하고 말함으로써 원수는 그들의 상상에 점점 더 크게 보인다. 사단이 강력한 존재인 것은 사실이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는 하늘에서 악한 자를 추방시키신 능력 있는 구주가 계신다는 사실이다. 사단은 우리가 그의 힘을 과장할 때 기뻐한다. 왜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가? 왜 그분의 능력과 사랑을 높이지 않는가? DA 493.1
하늘 높은 보좌를 둘러 있는 언약의 무지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는 사실에 대한 영원한 증거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죄와 더불어 투쟁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을 결코 버리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우주에 증언하고 있다. 이것은 보좌 자체가 존속되는 한 우리에게 힘을 주고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보증이다. DA 493.2
예수께서 덧붙여 말씀하셨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그대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잃지 않도록 능력을 소유한 것으로 인해 기뻐하지 말라. 자만에 빠져 그대의 주님의 정신과 힘으로 일하는 대신에 그대 자신의 힘으로 일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자아는 일에 어느 정도 성공이 따르면 명성을 높이려고 한다. 자아는 아첨하고 또 스스로 높아져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하나님은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신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고 말한다. 우리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타고나지 않은 어떤 능력에 의지하는 것을 배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책임감을 지속적으로 느끼는 것만큼 우리의 마음을 그처럼 강하게 붙들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리스도의 용서하시는 사랑을 느끼는 것만큼 행동의 동기를 그처럼 깊게 하는 것은 없다. 우리는 하나님과 접촉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성령의 감화를 받아서 동료 인간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된다. 그 때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연합되고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됨을 기뻐하라. 그대가 자신보다도 더 높이 쳐다볼 때에 그대는 인간의 연약함을 끊임없이 느끼게 될 것이다. 그대가 이기심을 적게 가지면 가질수록 구주의 탁월하심을 더욱 명확하게 그리고 더욱 충분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자신을 빛과 힘의 근원에 더욱 가까이 연결시키면 시킬수록 더욱 큰 빛이 그대에게 비칠 것이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하여 더욱 큰 힘이 그대에게 주어질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며 온 하늘 가족과 하나가 됨을 기뻐하라. DA 493.3
칠십 인들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성령께서는 생생한 실재들로 그들의 마음에 감명을 주었으며 그 심령의 비(碑)에 진리를 기록하셨다. 군중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들은 차단되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처럼 보였다. DA 494.1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그 시간에 영감을 받은 것을 아시고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라고 하셨다. DA 494.2
소위 위대하고 현명하다고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자랑하는 모든 지혜로써도 그리스도의 품성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외모로, 곧 인간으로서 그분에게 닥쳐온 굴욕을 보고 그분을 판단하였다. 그러나 어부들과 세리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었다. 제자들까지도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내기를 원하셨던 모든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러나 가끔 제자들이 저희 자신을 성령의 감화에 굴복시켰을 때 그들의 심령은 계몽되었다. 제자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인성을 입으시고 저희 가운데 계신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이 지식을 슬기롭고 총명한 자들은 소유하지 못했지만,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 계시된 것에 대해 기뻐하셨다. 종종 그분께서 구약 성경의 말씀을 소개하고 그것들이 자기와 자기의 속죄 사업에 적용되는 것을 보여 주셨을 때 제자들은 성령의 깨우치심을 받고 천국의 분위기 가운데 들어갔다. 제자들은 선지자들이 기록한 영적 진리를 기록자 자신들보다 더 분명하게 깨달았다. 그 후에 그들이 구약 성경을 읽었을 때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교리나 이미 죽은 현인들의 어록들처럼 대하지 않고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로 대하였다.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다”(요 14:17)고 한 그분을 제자들은 바라보았다. DA 494.3
우리가 진리를 더욱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리스도의 성령으로 마음을 부드럽게 성령의 지배를 받는 것이다. 허영과 교만으로부터 영혼을 깨끗하게 하고, 영혼을 사로잡고 있던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그 속에 좌정하시도록 해야 한다. 속죄를 깨닫는 데 있어서 인간의 과학은 너무나 유한하다. 구속의 경륜은 철학으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매우 원대하다. 이것은 가장 깊은 추리로도 궁구할 수 없는 신비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구원의 과학은 설명될 수 없는 것이지만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자신의 죄됨을 깨닫는 자만이 구주의 귀중함을 분별할 수 있다. DA 494.4
그리스도께서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천천히 가면서 가르치신 공과는 교훈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백성들은 그분의 말씀에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베뢰아에서는 갈릴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유대에서 보다도 사람들이 유대인의 완고함에 눌려 있지 않았으므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마음에 받아들였다. DA 495.1
그분의 봉사 사업의 이 마지막 수개월 동안에 예수께서는 많은 비유를 말씀하셨다. 제사장들과 랍비들은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서 계속하여 더욱더 괴롭혔고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씀을 상징으로 가리셨다. 그들은 그분께서 하시는 말씀의 뜻을 알 수 있었지만 그분의 말씀에서 그분을 비난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는 없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에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는 거만한 기도는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1, 13)라는, 참회하는 탄원과 현저한 대조를 이루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의 위선을 견책하셨다. 열매 맺지 않은 무화과나무의 상징과 큰 잔치의 비유로써 그분은 회개하지 않는 민족에게 이르게 될 운명을 예언하셨다. 복음 잔치의 초청을 경멸하는 태도로 거절한 자들은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경고의 말씀을 들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눅 14:24). DA 495.2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은 매우 귀중하였다. 성가시게 구는 과부와 친구가 밤중에 빵을 달라고 하는 비유는 그분의 다음 말씀에 새로운 설득력을 부여하였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눅 11:9). 때때로 그들의 흔들리던 믿음은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 8)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회상하고 힘을 얻었다. DA 495.3
그리스도께서는 잃어버린 양에 관한 아름다운 비유를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분은 잃어버린 은전과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잃은 양에 관한 교훈을 더욱 확대시키셨다. 제자들은 이 교훈의 요점을 그 당시에는 충분히 깨달을 수 없었지만 성령께서 임하신 후, 이방인들의 수확과 질투심 많은 유대인들의 분노를 볼 때에 탕자의 교훈을 더욱 잘 깨달았으며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2, 24)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제자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가 비난과 빈곤과 핍박을 당할 때에 그들은 이 마지막 여행에서 하신 그분의 명령을 되새기면서 마음에 용기를 얻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눅 12:3234). DA 49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