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대접하는 것에 대하여 많이 강조한다. 환대하는 것을 의무로 명할 뿐만 아니라, 이 덕목을 행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그것이 가져오는 축복에 대하여 성경은 많이 언급하고 있다. 이들 중 제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브라함의 경험이다. 6T 341.1
창세기의 기록에 보면 이 부조가 여름 태양이 뜨거운 정오에 마므레 상수리나무 그늘 아래 쳐 놓은 자기 천막 문에서 쉬는 것을 볼 수 있다. 세 사람의 나그네가 가까이 지나간다. 그들은 대접을 원하지도 않았고 도와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들이 기분을 상쾌하게 하지 않은 상태로 계속 길을 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이었으며, 위엄과 재물을 갖춘 사람이었고, 높이 존경을 받고 있었으며, 명령하는데 익숙해 있었다. 그런데 그가 이들을 보자 그는 “달려나가 영접하여 몸을 땅에” 구부렸다. 그중 인도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 (창 18:2, 3) 소서. 친히 그가 물을 떠와서 그들이 발의 먼지를 씻을 수 있게 하였다. 그가 그들의 음식을 택하였다. 그들이 시원한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동안 그의 아내 사라는 그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준비하였고 아브라함은 그들이 그의 대접을 받는 동안 존경 어린 태도로 서 있었다. 길가는 자들, 다시는 그리로 지나가지 않을지도 모르는 나그네들에게 이런 친절을 베풀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접이 끝난 후 그 손님들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는 하늘 천사들을 대접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광스러운 사령관, 그의 창조주, 구주, 왕을 대접하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늘의 회담 내용이 알려졌고, 그는 “하나님의 친구” 라는 소리를 들었다. 6T 341.2
아브라함의 조카 롯은 비록 소돔성에 자리잡고 살았지만 이 부조의 친절과 환대의 정신에 젖었었다. 해질녘에 두 나그네를 성문에서 만나자, 이 악한 성에서 그들에게 닥쳐올 위험을 알고 롯은 그들을 강권하여 집으로 데려왔다. 그와 자기 가정에 엄습해 올지도 모르는 위험을 생각지 아니하였다. 위험 당한 자들을 보호하고 집 없는 자들을 돌보는 것이 그의 삶의 일부였으며, 알지 못하는 두 여행자에게 베푼 친절은 그의 집으로 천사들을 들이게 하였다. 그가 보호하고자 했던 자들이 그를 보호하였다. 저녁에 그는 그들을 안전하게 하고자 그의 문으로 인도하였다. 새벽에 그들이 그와 그의 가족을 멸망할 성의 문으로부터 안전하게 이끌어 내었다. 6T 342.1
이러한 친절의 행동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 속에 기록으로 남길 중요성이 충분히 있다고 보셨다. 천년 이상이나 지난 후에 영감 받은 사도는 그들에 관하여 언급한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느니라” (히 13:2). 6T 342.2
아브라함과 롯에게 주어졌던 특권을 우리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환대를 베풂으로 우리도 그분의 천사들을 우리의 처소에 들일 수 있다. 오늘날에도 천사들이 사람의 모양으로 사람 사는 집에 들어오며 그들에 의하여 대접을 받는다. 하나님의 얼굴빛에 사는 기독교인들은 항상 보이지 아니하는 천사들의 동행을 얻게 되고 이 거룩한 존재들은 우리의 가정들에 축복을 남기고 떠난다. 6T 342.3
“대접하기를 좋아하는 자” 라는 이름은 교회에서 책임을 져야 하는 자에게 성령에 의하여 붙여지는 이름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교회 전체에 다음과 같은 명령이 주어진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 4:9, 10). 6T 342.4
이 권고는 이상하게도 무시되었다. 기독교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서도 참된 환대가 거의 없다. 우리 백성 중에서도 환대를 베풀어야 할 기회를 마땅히 생각할 만큼 특권과 축복으로 생각지 않고 있다. 너무 사귐성이 적고, 가족 식탁에 두세 사람의 자리를 더 만드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거나 아니면 거창하게 차린다. 어떤 이들은 “너무 일이 많다” 고 불평한다. 그러나 만일 “특별한 준비를 못했지만 우리가 차린 식탁으로 환영합니다” 라고 말하면 그런 불평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기대하지 않던 손님이 애써서 준비하여 맞은 손님보다 영접해 준 사실에 대하여 훨씬 더 감사할 것이다. 6T 343.1
주님께 속한 시간을 다 잡아먹는 손님 접대 준비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이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남들에게도 잘못하는 것이다. 잘 차린 접대를 준비함에 있어서 많은 이들이 자기 가족들에게 필요한 관심을 박탈하며, 그들의 모본은 남들로 같은 길을 따르도록 인도한다. 6T 343.2
손님들을 대접하는 데 있어서 멋지게 하고자 하는 바람에 불필요한 걱정과 부담이 생긴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만들고자 주부는 과로하게 되며, 많은 종류의 음식을 준비하였기 때문에 손님들은 과식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과로로, 다른 한편으로는 과식으로 인하여 고통과 질병을 얻게 된다. 이러한 거창한 잔치는 부담이며 손해이다. 6T 343.3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형제들과 자매들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가 보살핌을 베풀기를 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이 점에 예증을 주었다. 로마 교회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겐그리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 너희가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니라” (롬 16:1, 2). 뵈뵈는 사도를 대접하였다. 그녀는 도움이 필요한 나그네들을 잘 대접하는 자였다. 그녀의 모본을 오늘날의 교회가 따라야 한다. 6T 343.4
“나와 내 가족” 을 위해 자주 드러내는 이기적 관심에 대하여 하나님은 불쾌하게 생각하신다. 이런 정신을 간직하는 각 가정은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나타난 순결한 원칙들에 의하여 마음이 바뀌어야 한다.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들은, 손님 대접하기를 즐겨 하지 않는 사람들은, 많은 축복을 잃을 것이다. 6T 344.1
우리 일꾼들 중 어떤 이들은 자주 형제된 자나 나그네된 손님들을 대접해야만 할 위치에 있다. 합회가 이를 위하여 특별한 계정을 두어야 하며, 그들의 정규 봉급 이외에도 이 과외의 경비를 넉넉히 충당할 자금이 주어져야 한다고 촉구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대접하는 일을 모든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합회나 교회에서 한두 사람이 대접을 도맡아 하고, 형제들을 대접하기 위하여 몇 일꾼들을 고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이것은 이기심에서 생겨난 발상이며,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다. 6T 344.2
이곳 저곳으로 전도자로 혹은 선교사로 여행하는 자들은 그들이 일하는 지역의 교인들로부터 대접을 받아야 한다. 형제 자매들이여, 엄청난 개인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들을 위하여 처소를 제공하라. 6T 344.3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위하여 대접하는 데 소요된 모든 경비를 계산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그 사업을 위하여 필요한 것은 다 공급하실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형제들을 대접하는 자들은, 손님들과 자기 자신에게 그 방문이 유익하게 되도록 최선을 다함으로, 특별한 축복을 받는 일에 합당하다고 하늘에 기록된다. 6T 344.4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삶 속에서 환대의 교훈을 남기셨다. 바닷가에서 굶주린 군중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에 그분은 그들이 기력을 차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하셨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마 14:16). 창조의 능력을 행사하심으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음식을 공급하셨다. 그러나 얼마나 단순하게 그 음식이 준비되었는가! 사치스런 것이 없었다. 하늘의 모든 자원을 가지신 그분이 명령만 하면 백성들을 위하여 풍성한 식탁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이 필요한 것만을 채워 주셨다. 그분께서는 해변가에 사는 어부들의 일용할 양식이었던 것을 주셨을 뿐이었다. 6T 345.1
만일 사람들이 오늘날 단순한 습관을 지니고, 자연 법칙에 조화되게 살면 모든 인류의 필요를 채우기에 충분한 양의 공급이 이루어질 것이다. 핍절한 상황이 훨씬 줄어들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할 기회가 더욱 많아질 것이다. 6T 345.2
그리스도께서는 사치의 욕구를 충족시키시면서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이끌고자 하지 아니하셨다. 그분이 제공하신 그 단순한 음식은 그분의 능력뿐만 아니라 그분의 사랑, 생활에 늘 있는 필요를 보살피는 그분의 부드러운 손길에 대한 보증이었다. 그들을 보리떡으로 먹이시는 동안 그분은 생명의 떡을 또한 주셨다. 여기 우리의 모본이 있다. 우리의 음식이 단순하고, 심지어 빈약할 수도 있다. 우리의 형편이 빈궁할 수도 있다. 우리의 자원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었던 제자들의 형편보다 더 낫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핍절한 자들과 접촉하게 될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우리가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부족함이 채워지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이다. 6T 345.3
이와 관련하여 사르밧 과부의 이야기를 읽어보자. 흉년이 든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종을 이 이방 나라의 여인에게 보내사 음식을 요구하게 하셨다. “저가 가로되 당신의 하나님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왕상 17:12-14). 6T 345.4
이 페니키아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보여준 환대는 대단한 것이었다. 또 그녀의 믿음과 너그러움은 크게 보상되었다.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함을 아노라 하니라” (15-24절). 6T 346.1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능력은 현재 엘리야 시대보다 못하지 않다. 지금이라고 해서 그리스도께서 주신 약속이 그가 말씀하신 때보다 덜 확실한 것이 아니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마 10:41). 6T 346.2
그분의 첫 제자들에게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분의 신실한 종들에게도 그리스도의 말씀은 적용된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0절). 그분의 이름으로 제공된 친절한 행동은 반드시 인정받고 보상받게 된다. 그와 똑같이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연약하고 가장 비천한 하나님의 가족을 자상하게 포함시키셨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 (믿음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하나 된 형제) 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42절). 6T 347.1
가난하다고 해서 환대하는 것을 피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생계를 위하여 애쓰고, 수입과 지출을 맞추는 데 힘든 가정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성도들의 용모와 자태에 나타난 예수님을 사랑하며, 그들의 방문이 유익한 것이 되도록 신자나 불신자에게 환대를 베풀 준비가 되어 있다. 가족 식탁과 가족 제단으로 손님들을 맞이한다. 함께 기도하는 시간은 대접받은 자들에게 감명을 준다. 심지어 한 번 방문으로 한 영혼을 죽음에서 구원하게 될 수도 있다. 이 일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계산을 하신다. “내가 갚으리라.” 6T 347.2
형제 자매들이여, 대접과 친절한 보살핌이 필요한 자들을 그대들의 가정으로 초청하라. 너무 잘 차리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필요를 따라 그들을 영접해 들이고 그들에게 참된 기독교적 환대를 보이라. 사귐 속에는 귀한 특권들이 있다. 6T 347.3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우리의 먹을 양식을 나누어 줌으로 우리는 희망과 용기와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나누어 주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고후 1:4) 위로해야 한다. 그러면 보증은 우리의 것이 된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6T 347.4
우리는 죄와 유혹의 세상에 살고 있다. 우리 주위에는 그리스도 없이 죽어 가는 영혼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힘닿는 데까지 그들을 위해 일하기를 원하신다. 만약 쾌적한 집을 소유하고 있다면 집 없는 어린것들을 집으로 들이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동정과 친절한 말과 존경과 예절을 그리워하는 자들을 집으로 초청하라. 그대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고자 소원한다면, 그대는 그분의 피로 사신 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한다. 6T 348.1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들은 경험이 미숙한 자들과 또 동정과 관심이 필요한 많은 이들과 관련을 맺고 산다. 그들은 구조가 필요하다. 그들은 연약하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도움을 필요로 한다. 무기력하고 무식하고 그분의 소자 중 지극히 작은 자로 여겨지는 자를 향해 자애를 나타내시는 분의 힘으로 우리는 그들의 미래의 복지를 위하여, 기독교인의 품성을 꼴 짓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이 때때로 우리의 인내심을 매우 심하게 시험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삼가 이 소자 중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저희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마 18:10). 이러한 영혼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들에게 구주께서는 선포하신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6T 348.2
이 일을 행한 자들의 이마에는 희생의 관이 씌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 우리는 우리가 도와주었던 자들을, 우리 집으로 초대했던 자들을, 우리가 유혹에서부터 끌어내었던 자들을 볼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그들의 얼굴에서 반사되는 것을 볼 것이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계 22:4). 6T 3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