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께서 한번은 어떤 바리새인의 잔치에 손님으로 참석하셨다. 그는 가난한 자나 부자를 차별하지 않고 그들의 초청에 응하셨으며 그분은 으레 하시던 대로 당신 앞에 전개되는 장면을 당신의 진리의 공과와 연결시키셨다. 유대인들에게는 국가적 또는 종교적 축제와 연관된 거룩한 절기가 철마다 있었다. 그것은 그들에게는 영생의 축복의 표상이었다. 이방 사람들이 문 밖에서 부러워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가운데 저희가 장차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앉아서 먹게 될 그 큰 잔치가 그들이 이야기하고 명상하기 좋아하는 주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주시려고 하신 경고와 교훈을 이제 큰 잔치의 비유로써 예증하셨다. 유대인들은 현세나 내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저희 혼자만 가지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방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를 나누어 주려 하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유대인 자신들이 바로 그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오라는 자비로운 초청을 거절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그들이 멸시한 자비의 초청을 저희가 업신여기고 마치 문둥병자에게 하듯이 저희 옷깃이 그들에게 닿을까봐 상대하기를 싫어하던 자들에게 보내실 것이라는 뜻을 보여 주셨다. COL 219.1
그 바리새인은 자기 잔치에 청할 손님을 택할 때 전적으로 이기적인 이해관계를 생각하고 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또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저희가 갚을 것이 없는 고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이 부활시에 네게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COL 220.1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전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셨던 교훈을 되풀이해 말씀하신 것이었다. 주께서는 그들의 거룩한 축제들 때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신 14:29)고 말씀하셨다. 이 집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실물 교훈이 되어야 했다. 이 백성들은 이와 같이 남을 진정으로 대접하는 기쁨을 배움으로 일 년 내내 고아와 과부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축제는 보다 넓은 교훈을 포함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준 영적 축복은 저희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생명의 떡을 주신 것은 그들로 그것을 세상에서 나누어 주도록 하시기 위함이었다. COL 220.2
저희는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들의 이기심에 대한 견책이었다. 바리새인에게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이 귀에 거슬렸다. 그 때에 그들 중에 한 사람이 경건한 태도로 예수의 말씀의 주제를 돌릴 생각으로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말했다. 이 사람은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틀림없이 한 자리를 차지할 것처럼 매우 자신 있게 말했던 것이다. 이 사람의 태도는 약속된 구원의 조건들은 이행하지 않으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을 기뻐하는 자들의 태도와 비슷하다. 이 사람의 정신은 아래와 같이 기도한 발람의 정신과 같다. “나는 의인의 죽음같이 죽기를 원하며 나의 종말이 그와 같기를 바라도다”(민 23:10). 이 바리새인은 자기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생각지 않고 자기가 천국에서 누리게 될 축복만을 생각했다. 이 사람이 한 말은 결국 잔치에 참석한 손님들의 마음을 그들의 실제적인 의무에 관한 주제로부터 떠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는 청중의 생각을 현세에서 의인들의 부활이 있게 될 먼 장래로 옮기려고 생각했다. COL 221.1
그리스도께서는 이 위선자의 마음을 아시고 그를 주목하시면서 무리들에게 저희가 누리고 있는 특권의 가치와 특성에 대하여 밝히 말씀하셨다. 그는 그들에게, 장래의 축복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바로 당장에 저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COL 221.2
그는 말씀하시기를,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 때가 되었을 때에 주인이 종을 올 만한 사람에게 보내어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는 두 번째 기별을 전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저희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며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고 했다. COL 221.3
이러한 핑계는 어느 하나도 불가피한 사유에 근거하고 있지 않았다. 밭에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다고 한 사람은 이미 그 밭을 사 놓았다. 그가 급히 가서 그것을 본 것은 그의 관심이 그가 산 토지에 집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소 역시 이미 사 놓은 것으로 그 소를 시험한다는 것은 그것을 산 사람의 흥미를 만족시켜 보겠다는 것에 불과했다. 세번째 핑계는 이유에 닿지 않는다. 장가를 들었다는 그 사실이 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이유가 되지 않는다. 그의 아내 역시 잔치에 참석하는 것을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즐거움을 누릴 자신의 계획이 따로 있었고 그 계획이 자기가 참석하기로 약속한 잔치보다 더 좋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 거룩한 잔치에서보다도 다른 사교적 모임에서 즐거움을 찾는 데 익숙해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용서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고 또 거절할 때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가지 못하겠노라”는 말은 “나는 갈 마음이 없다”는 말에 가면(假面)을 씌운 것에 불과한 말이다. COL 222.1
이 모든 핑계는 그들이 딴 생각으로 여념이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초대 받은 사람들의 정신이 온통 다른 관심사에 몰두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했었던 초청은 제쳐놓아진바 되었고 그들을 초청한 마음이 너그러운 친구는 그들의 냉담으로 모욕을 당했다. COL 222.2
그리스도께서는 큰 잔치의 비유를 가지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제공되는 축복을 설명하고 계신다. 준비된 음식은 곧 그리스도 자신이시다. 그는 하늘에서 내려오신 양식인 동시에 그에게서부터 구원의 은혜가 흘러나온다. 주의 사자들은 유대인들에게 이미 구주의 초림에 대하여 예고해 왔으며 그리스도를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이라고 지적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준비하신 잔치에서 하늘이 제공할 수 있는 최대의 선물 곧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값진 잔치를 차리게 하셨고 무진장의 물자를 준비하게 하셨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 6:51)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COL 222.3
그러나 복음 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세상에 대한 관심보다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이는 그 한 가지 목적을 더 중요시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셨다. 그는 사람들에게 당신을 섬기는 일을 모든 세속적이고 이기적인 문제보다 먼저 생각하라고 요구하신다. 그분은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을 받으실 수 없다. 세속적 사물에 애착을 둔 마음을 하나님께서 가납하실 수 없다. COL 223.1
이 교훈은 각 시대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야 한다. 우리는 그의 지도를 받아들여야 하고 그와 교제하는 일을 세상 친구와 교제하는 일보다 더욱 귀히 여겨야 한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마 10:37)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COL 223.2
그리스도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식탁에 둘러앉아서 떡을 뗄 때마다 “무릇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라는 말을 반복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처럼 엄청난 비용을 들여 준비해 놓은 잔치에 참여할 식객을 찾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보여 주셨다. 그의 말씀을 들은 자들은 저희가 은혜로운 초청을 업신여겼다는 것을 알았다. 세상 재물과 부와 오락이 저희의 정신을 앗아갔다. 그들은 일제히 핑계대었다. COL 223.3
오늘날도 그러하다. 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거절하기 위하여 그들이 댄 모든 핑계는 오늘날 복음의 초청을 거절하는 모든 핑계의 기초가 된다. 사람들은 복음의 초청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저희의 세속적 번영을 위태롭게 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저희는 세속적 이익을 영원한 사물보다 더 귀하게 여긴다. 저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로 그 축복이 오히려 저희의 영혼을 창조주와 구주에게서 떠나게 하는 장해물이 되고 있다. 그들은 세상 사업에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자비를 전하는 사자에게 “시방은 가라 내가 틈이 있으면 너를 부르리라”(행 24:25)고 말한다. 또 어떤 이들은 만일 저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할 것 같으면 저희의 사교 관계에 어려운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친척과 친지와의 관계를 그르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저희 자신이 비유 가운데 묘사된 바로 그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잔치를 준비한 주인은 그들의 이같은 신통치 않은 핑계를 당신의 초청에 대한 모욕으로 여기신다. COL 224.1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고 말한 사람은 많은 부류의 사람들을 대표한다. 자기 아내나 남편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데 지장을 주도록 용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남편은 “내 아내가 반대하고 있는 이상 나의 소신을 따라 행할 수 없으며 내 아내의 감화가 나로 하여금 그것을 단행하기에 지극히 곤란하게 한다”고 말한다. 아내는 또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는 은혜의 초청을 듣고 말하기를 “청컨대 내가 사양하나이다. 내 남편이 자비의 초청을 거절합니다. 그는 그의 사업이 복음을 받는 데 방해가 된다고 말합니다. 나는 남편과 행동을 같이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므로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한다. 자녀들이 또한 마음에 감명을 받고 나오고자 한다. 그러나 저희는 저희 부모를 사랑한다. 그런데 저희 부모가 복음의 초청에 응하지 아니함을 보고 그들도 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도 “내가 사양하나이다”라고 말한다. COL 224.2
이 모든 사람들이 가정불화가 생길까 두려워서 구속의 초청을 거절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순종하기를 거절함으로 저희 가정의 평화와 행복을 확보하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이기주의를 심는 자들은 이기주의의 결과를 거둘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거절함으로 오직 인간의 사랑을 순결하고 확고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을 거절한다. 저희는 천국을 잃어버릴 뿐 아니라 하늘을 희생하면서까지 우리에게 제공해 주신 그 참된 행복을 얻는 일에 실패한다. COL 225.1
비유 가운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자기가 보낸 초청이 어떻게 취급되었는지를 알고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였다. COL 225.2
그 주인은 자기의 초청을 업신여긴 자들에게서 돌아서서 집과 토지가 없는 굶주린 자들을 초청하였다. 그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들과 준비된 축복을 감사할 자들을 초청하였다.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마 21:31)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비록 사람들의 배척과 멸시를 받는 몹시 가련한 자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돌보심과 사랑을 받지 못할 만큼 그처럼 비천하고 가련한 사람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근심에 눌린 자들과 지치고 압제받는 자들이 자기에게 나오기를 바라고 계신다. 그분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빛과 기쁨과 화평을 그들에게 주시고자 하신다. 아무리 극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깊은 긍휼과 사랑의 대상이 된다. 그분은 당신의 성령을 보내셔서 그에게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내시고 그들을 당신께로 이끌고자 하신다. COL 225.3
가난한 자들과 소경들을 데려온 종은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오히려 자리가 있나이다”라고 보고한다. 그러자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했다. 이 말씀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유대민족 이외의 지역 곧 세상의 거리와 골목에서 복음 사업이 추진될 것을 가리키셨다. COL 226.1
바울과 바나바는 이 명령을 따라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버리고 영생 얻음에 합당하지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땅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행 13:46~48)고 말했다. COL 226.2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전파한 복음 기별은 그분의 초림에 대한 기별이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이 기별은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속하기 위하여 영광 중에 재림하실 것을 예고하는 동시에 성도들이 믿음과 순종을 통해서 영광스러운 유업을 받게 되리라는 소망을 사람들에게 전해 준다. 이 기별은 오늘날의 사람들에게도 주어진 기별로서 이 시대에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기별도 내포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들이 성취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 말씀으로 우리는 주께서 문 앞에 이르셨음을 알 수 있다. COL 226.3
요한은 그리스도의 재림 바로 전에 복음 기별이 힘 있게 전파될 것을 요한계시록에 예고했다. 그는 한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계 14:6, 7)라고 외치는 것을 보았다. COL 227.1
이 예언을 보면, 심판에 대한 경고와 거기에 관련된 기별을 전한 다음에 이어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강림하신다. 심판이 가까웠다는 선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선포를 영원한 복음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전도하고 그 재림이 임박했다는 것을 선포하는 일이 복음 기별에 매우 중요한 부분임을 나타내고 있다. COL 227.2
성경은 말세에는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업과 오락과 돈 모으는 일에 열중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사람들은 영원한 사물에 대해서는 눈이 어두워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 COL 228.1
오늘날에도 그러하다. 사람들은 하나님도 없고 천국도 없고 내세도 없는 것처럼 재물과 이기적 방종을 추구하는 일에 여념이 없다. 노아 시대에 홍수에 대한 경고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희 죄악을 깨닫게 해서 회개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강림이 임박했다는 기별도 사람들에게 그들이 세상일에 너무 몰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 기별이다. 이 기별은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사물에 관심을 갖고 주의 잔치에 오라는 초청에 주의를 기울이게 하기 위한 것이다. COL 228.2
복음의 초청은 온 세상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계 14:6)에게 주어지는 기별이다. 경고와 자비가 섞인 마지막 기별은 그 영광으로 온 세상을 환하게 해야 한다. 이 기별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계급의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한다. “길과 산울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COL 228.3
세상은 복음의 기별을 듣지 못해 멸망하고 있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주리고 있는데 사람의 유전이 섞이지 아니한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성경을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성경 속에 주신 축복을 받지 못하고 있다. 주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기별을 전하기를 요구하신다. 영생의 말씀이 죄악 중에서 죽어가는 자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COL 228.4
길과 산울가로 가라는 명령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봉사할 부르심을 받은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설명되어 있다. 온 세상은 그리스도의 종들의 일터이며 모든 인간 가족은 그들의 회중(會衆)이다. 주께서는 당신의 은혜로운 말씀이 각 사람의 심령에 깊이 박히기를 바라신다. COL 229.1
이 일은 대부분 개인적인 활동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그것이 그리스도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대개 개인적 면담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셨다. 그는 단 한 사람의 청중일지라도 존중히 대하셨다. 그같은 단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복음기별이 수천 명에게 퍼진 일이 종종 있었다. COL 229.2
우리는 구도자들이 우리에게로 오기를 기다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야 한다. 강단에서 말씀을 설교하는 것은 겨우 그 일이 시작된 것에 불과하다. 우리가 복음을 그들에게 가지고 가지 않는 한 복음에 접할 기회를 전혀 갖지 못할 사람들이 많이 있다. COL 229.3
잔치에 오라는 초청은 먼저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는데, 그들은 백성들의 교사와 지도자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며 그리스도의 초림을 예고하는 예언의 두루마리를 가진 사람들로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예시하는 표상적인 봉사(제사 제도)를 위탁받은 백성들이었다. 제사장들과 백성들이 그러한 부르심에 응했더라면 그들은 복음의 초청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에 그리스도의 사자들과 협력하는 자가 되었을 것이다. 진리를 그들에게 위탁하신 것은 저희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저희가 그 초청을 거절했을 때 그 초청은 가난한 자와, 불구자와, 절뚝발이와, 소경들에게 보내졌다. 세리와 죄인들이 이 초청을 받아들였다. 복음의 초청을 이방 사람들에게 보낼 때에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그 일이 진행된다. 이 기별은 먼저 “큰 길” 곧 세상 사업에 크게 활약하는 자들과 백성들의 교사와 지도자들에게 전해져야 한다. COL 229.4
주의 종들은 이것을 염두에 두도록 하라. 이 말씀은 양 무리의 목자들, 곧 하나님께서 임명하신 교사들이 마땅히 명심해야 할 말씀이다. 상류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친절한 애정과 형제우애로 찾아야 한다. 실업계에 있는 사람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뛰어난 발명력과 과학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현 시대에 대한 특별한 진리를 받지 못한 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이 초청의 기별을 들어야 할 사람들이므로 그들에게 이 초청의 말씀이 주어져야 한다. COL 230.1
부자들을 위해서도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들은 하늘의 선물을 위탁받은 자로서 저희의 책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들로 하여금 죽은 자와 산자를 심판하실 자와 반드시 회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해야 한다. 부자들을 위해 일할 때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일할 필요가 있다. 부자들은 자기의 재물만을 믿고 닥쳐올 위험을 생각지 않는 경향이 너무도 많다. 그들의 마음의 눈이 영원한 가치를 지닌 것에 이끌리도록 할 필요가 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고 하신 참된 행복의 원리를 인식할 필요가 있다. COL 230.2
세상에서 높은 학식을 가진 사람들과, 재물과 직업적인 면에 명망이 뛰어난 사람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들의 구원 문제를 말해 주는 일은 극히 드물다. 많은 그리스도인 교역자들이 이러한 계급의 사람들에게 접근하기를 꺼린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가령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하면 그가 변호사나, 상인이나 혹은 재판관이라고 해서 우리가 수수방관하고 그가 죽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다. 낭떠러지를 향해 급하게 달려가는 사람을 보게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의 지위나 직업을 상관하지 않고 지체 없이 뒤로 물러나도록 소리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사람들에게 저희 영혼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경고를 지체 없이 말해 주어야 한다. COL 230.3
어떠한 사람이든지간에 그가 세상일에 열중하고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을 등한히 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지위가 높은 많은 사람들이 슬픔에 젖어 있고 세상의 허무함에 염증을 느끼고 있으며 저희가 가지지 못한 마음의 평강을 갈망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가장 높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 중에도 구원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있다. 주님의 일꾼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부드러워진 마음과 친절함을 가지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찾아간다면 많은 사람이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COL 231.1
복음 사업의 성공은 유식한 답변이나, 웅변적인 논증이나, 심오한 이론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별의 단순성과 생명의 양식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것을 주는 데 달려 있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까?” 이것이 곧 영혼의 요구이다. COL 231.2
많은 사람은 매우 단순하고 겸손한 방법으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가장 지성적인 사람들 곧 세상에서 가장 천재적인 재능을 소유한 남녀들일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에 대하여 사람들이 자기가 가장 흥미를 갖는 사물에 대하여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의 단순하고 솔직한 말로 인하여 감동을 받는 일이 종종 있다. COL 232.1
미리 잘 준비하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별로 감화를 주지 못하는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자연스럽고 단순하게 말하는, 진실하고 정직한 표현은 오랫동안 그리스도와 그의 사랑에 대해 닫혀 있던 마음 문을 열게 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COL 232.2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는 자들은 그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일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보좌를 붙잡아야 한다. 그는 기도로써 하나님과 씨름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재간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가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성령을 주실 것이며 봉사하는 천사들은 그의 옆에 서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것이다. COL 232.3
예루살렘의 지도자들과 교사들이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진리를 받아들였던들 저희의 도성은 얼마나 훌륭한 선교 중심지가 되었겠는가! 타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님께로 돌아왔을 것이다. 거대한 진리의 군대가 주를 위하여 이 성에 모였을 것이다. 그리고 매우 신속하게 복음 기별을 세계 각처에 전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오늘날에도 세력 있고 재능이 있는 유용한 일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들을 통하여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고 쫓겨난 자들을 모아들이고 구원의 기별을 원근 각처에 전파하는 데 얼마나 놀라운 일을 성취할 수 있겠는가. 복음의 초청은 신속히 전파될 것이고, 주의 잔치에 많은 손님들이 몰려올 것이다. COL 232.4
우리는 빈천한 계층의 사람들은 등한히 하면서 위대하고 재능 있는 사람들만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자들에게 골목과 산울에 있는 사람들 곧 세상에서 가난하고 비천한 사람들에게도 가라고 명령하셨다. 궁정(宮廷)안과, 큰 도시의 골목길과 시골 외딴 길에는 교회와의 연락이 전혀 없이 고적하게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잊으셨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과 개인들이 있는데 그들은 낯선 땅에서 나그네 된 자들이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죄에 빠져 있고 곤경에 처해있다. 그들은 고난, 궁핍, 불신, 실망에 짓눌려 있다. 각종 질병이 그들의 육체와 영혼을 모두 괴롭히고 있다. 그들은 그러한 고난 중에서도 위안을 찾고자 갈망한다. 그러나 사단은 파멸과 죽음으로 인도하는 정욕과 오락 중에서 그들이 바라는 위안을 찾도록 유혹한다. 사단은 그들에게 저희 입술에서 재가 될 소돔의 사과를 주고 있다. 그들은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쓰고 있고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고 있다. COL 232.5
우리는 이러한 고난 중에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러 오신 대상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에게 보내는 그의 초청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1~3)라는 말씀이다. COL 233.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도덕적 능력이 부족한 외인들과 버림받은 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라는 특별한 명령을 주셨다. 종교에 대해 전혀 무관심한 것같이 보이는 사람들 가운데도 마음에 안식과 평화를 갈망하는 자들이 많이 있다. 비록 그들이 매우 깊은 죄 가운데 빠져 있다 할지라도 저희를 구원할 가능성은 있다. COL 233.2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그분은 각처로 두루 다니시며 고생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고 병든 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 후에 그분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큰 진리를 그들에게 소개하셨다. 이 일이 바로 그를 따르는 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대들이 사람들의 육신의 고통을 덜어 줄 때에 그들의 심령의 요구를 도와줄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가리키면서 홀로 회복의 능력을 가지신 크신 의사의 사랑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다. COL 233.3
바른 길을 떠나 절망 중에 있는 가련한 영혼들에게 그처럼 낙심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 주라. 비록 저희가 잘못을 저지르고 올바른 품성을 조성하지 못했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쁨, 곧 당신의 구원의 기쁨을 그들에게 돌려주시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 사단이 이용하고 있는 자들을 당신의 은혜의 왕국의 신민이 되게 하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분은 장차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내릴 진노에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 그들에게, 어떠한 사람도 고쳐서 깨끗케 하실 수 있는 분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라. 주의 식탁에 그들을 위한 자리가 있다는 것과 그분이 그들을 그 자리에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말해 주라. COL 234.1
골목길과 산울로 나가는 자들은 그들의 봉사를 필요로 하는 여러 같지 않은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들이 받은 모든 빛을 따라 살면서 그들이 알고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저희 자신을 위하여, 또는 저희 주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해야 할 더 큰 사업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 하나님께 대한 더욱 큰 지식을 갈망하지만 겨우 그 큰 빛의 희미한 광선을 보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들은 믿음으로 앞을 분간할 수 있는 축복을 달라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죄악이 관영한 대도시 가운데서 발견된다. 그들 중에 많은 이들이 매우 비천한 환경 가운데 처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에서 주목을 받지 못한 채 살아간다. 목사와 교인들까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비천하고 가련한 처지에 있지만 그들은 주님의 증인들이다. 비록 저희가 별로 많은 빛을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으로써의 수양을 받을 기회도 별로 갖지 못했지만 헐벗고 굶주리고 추운 가운데서도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려고 애쓰고 있다.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받은 청지기들은 이러한 사람들을 찾아서 그들의 집을 방문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저희의 필요를 도와주어야 한다. 성령의 감동을 입어 그들과 같이 성경을 연구하고 단순하게 기도하라.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그들의 심령에 하늘의 양식이 될 귀한 기별을 주실 것이다. 귀한 축복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이 가정에서 저 가정으로 전해질 것이다. COL 234.2
비유 가운데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명령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복음을 받도록 해야 된다는 가르침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히려 초청의 긴급성과 권면을 효과적으로 제시해야 함을 나타낸다. 복음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복음 기별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 55:1),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운 능력이 우리를 강권하여 주께로 나아가게 한다. COL 235.1
구주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물러가시거나 위험하다고 해서 돌아서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직 그분은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하시면서 항상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신다. 비록 마음이 완고한 자들로부터 그분의 사랑이 멸시를 받을지라도 그분은 반복해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라는 말씀을 더욱 힘 있게 호소하신다. 영혼을 끌어당기는 그분의 사랑의 힘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그리스도께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고 말하게 된다. COL 235.2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실 때에 가지셨던 그같은 애틋한 사랑을 당신의 사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만 “오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오라는 초청을 듣지만 그들의 귀가 너무나 둔해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은 너무 흐려져서 저희를 위하여 준비된 온갖 좋은 것을 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너무 많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 ‘나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시오’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일꾼들은 단념해서는 안 된다. 부드럽고 동정 깊은 사랑으로 낙망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그대의 용기와 그대의 소망과 그대의 힘을 불어넣어 주라. 친절로써 그들이 오도록 강권하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22, 23). COL 235.3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동행할 것 같으면 그분은 그들이 전하는 기별에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설명해 줌으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강권함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몫을 이행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지난 세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존 번연은 독신(瀆神)과 방탕에서 구원함을 받았고 존 뉴턴은 노예 매매자의 처지에서 구원함을 받은 자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전파하였다. 오늘날에도 존 번연과 같은 사람과 뉴턴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구속함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많은 불쌍하고 버림받은 자들이 구원함을 받게 될 것이며,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또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힘쓰게 될 것이다. 별로 이렇다 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더 좋은 방법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릇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같은 말이 임할 것이다. 완고한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아보신 까닭에 저희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부드럽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극악한 죄와 허물 속에서 나와 일찍이 기회와 특권을 가졌으나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한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보배롭게 여기시는 그분의 택하신 백성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실 때에 그분의 보좌 다음에 서게 될 것이다. COL 236.1
그러나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히 12:25). 예수께서는 “전에 청했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 초청을 거절했으므로 그들 중에는 한 사람도 다시 초청을 받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저희 자신을 사단의 권세에 내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또 그분의 사랑이 우리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억제하는 영구적 원칙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완전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주께서는 이미 나타내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나타내실 수 없다. 만일 예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달리 감화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COL 236.2
그대가 자비의 기별을 거절할 때마다 그대 자신은 더욱더 불신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대가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때마다 그대는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더욱더 듣기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최후의 자비의 초청에 응할 기회를 점차적으로 잃어버리게 된다. 그대는 고대 이스라엘에 대해 쓴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 4:17)는 말씀이 그대를 두고 기록된 말씀이 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4, 35)고 말씀하시면서 우셨듯이 그대를 두고 그렇게 우시지 않도록 하라. COL 237.1
우리는 지금 최후의 자비의 기별 곧 최후의 초청을 인류에게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길과 산울가로 가라” 라는 명령은 거의 다 성취되려 하고 있다.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초청이 주어질 것이다. 주의 사자들은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늘의 천사들은 아직도 사람들과 협력하여 일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온갖 권면으로 그대가 돌아오도록 강권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가 당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의 빗장을 빼고 문을 열려는 무슨 기미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천사들은 잃어버렸던 또 다른 영혼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하늘로 가져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하늘의 천만 천사는 또 다른 영혼이 복음 잔치의 초청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거문고를 타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COL 23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