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교회의 사명은 멸망해 가는 죄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 사명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고, 그 사랑의 효력을 통하여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이 시대를 위한 진리는 지상의 어두운 구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이 일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이기적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져 그분과 조화되게 일해야 한다. 3T 381.1
현재의 냉랭함과 불신에는 원인들이 있다. 세상에 대한 사랑과 생활의 염려가 영혼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킨다. 생수가 우리 마음 속에 있어야 하며, 그것이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어 우리에게서 흘러 나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 넣어 주신 일을 달성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생애의 빛을 즐기려면, 진리의 지식 안으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해 들이기 위해 자신의 노력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의 생애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한 노력과 희생으로 특징 지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즐거움의 결핍에 대한 불평이 사라질 것이다. 3T 381.2
천사들은 항상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기쁨이다. 이기적인 마음의 소유자들이 비천한 봉사라고 생각하는 일, 곧 비참한 자들과, 품성과 지위에 있어서 모든 면에 열등한 자들을 섬기는 일은 하늘 궁정의 순결하고 죄없는 천사들이 하는 사업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적 사랑의 정신은 하늘에 충만한 정신이며, 하늘의 기쁨의 정수이다. 3T 381.3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자 애쓰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일하고 심지어 희생을 하는 일에서까지 특별한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정신 혹은 하늘의 정신을 가질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늘 천사들의 사업에 연합하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고상한 기쁨을 나누어주는 행복에 참여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 하리라” (눅 15:7) 고 말씀하셨다. 만일, 죄인이 회개하는 것을 보는 것이 천사들의 기쁨이라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은 죄인들이, 그들을 통하여 다른 죄인들이 회개하고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을 보는 것이 기쁨이 되지 않을 것인가?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과 조화를 이루어 일하는 중에, 우리는 이 사업을 떠나서는 실현될 수 없는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T 381.4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리는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자아를 부정하고, 남에게 빛을 나누어주고, 빛을 전하는 데 그들의 재물을 드려야 할 큰 책임을 지게 한다. 그들이 하늘과 연결되어 있다면, 그들은 천사들과 조화를 이루는 사업에 종사하게 될 것이다. 3T 382.1
세상 사람들의 원리는 없어질 이 세상의 사물을 가능한 한 최대한으로 갖는 것이다. 취하고자 하는 이기적 사랑이 그들의 생애에 있어서 지배적인 원리이다. 그러나 가장 순수한 기쁨은 부 (富) 에 있지 않고, 탐욕이 언제나 충족되는 곳에 있지 않고, 지족이 지배하고 자아 희생적 사랑이 지배의 원리가 되어 있는 곳에서 발견된다. 방종의 생애를 보내어 마음이 불만으로 가득 찬 수천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기심의 희생자들이며, 방종으로 마음을 만족시키려는 헛된 노력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불행의 흔적이 바로 그들의 얼굴에 찍혀 있고, 그들 뒤에는 사막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는 그들의 길에 선행의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3T 382.2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생애를 지배하는데 비례하여 탐욕, 이기심, 안일을 사랑하는 정신은 극복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종임을 주장하는 우리는 그분의 뜻을 행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행복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하여 고무된 비이기적인 일에 정비례할 것이다. 3T 382.3
구속의 경륜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는 모든 자선 사업이 그 세부에 이르기까지 두 배로 축복을 받는,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을 제정하였다.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 동시에 스스로가 더 큰 축복을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일에 사람의 도움이 없어도 당신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인간이 자아 부정과 자선심을 계발할 수 있는 이 큰 사업의 한 부분을 맡아 행하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음을 아셨다. 3T 382.4
인간의 자선의 복된 결과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 구주께서는 인간을 그분의 동역자의 명단에 올리는 계획을 세우셨다. 인간의 자선을 요구하는 일련의 환경을 통하여, 그분은 인간에게 자선심을 배양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을 주시고, 인간으로 하여금 가난한 자를 도우며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주게 하신다. 그분은 가난한 자들을 그분의 대표자로 보내셨다. 그들의 필요에 따라서, 황폐된 이 세상은, 그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진리를 제시하기 위한 재물과 영향력의 달란트를 우리에게서 끌어낸다. 우리의 노동력이나 자선을 통하여 이 요구에 유의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분의 형상으로 동화된다. 베풂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며, 그리하여 진정한 부를 쌓게 된다. 3T 382.5
계획안에서 그리스도인 자선이 크게 부족되어 왔다.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가장 좋은 일을 할 수 있었던 자들이 거의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롭게도 한 부류의 사람들을 진리의 지식 가운데로 이끌어 주셔서 그들이 이 세상의 보화와 비교하여 그 진리의 무한한 가치를 깨닫게 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나를 따르라” 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당신께서 준비하신 만찬에 오도록 초청하심으로써 그들을 시험하고 계신다. 그분은 그들이 어떤 품성을 형성할 것인지, 그들이 자신의 이기적 유익을 영원한 부보다 더 가치 있게 볼 것인지 보고자 주시하고 계신다. 사랑하는 이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다음의 비유에 언급된 바와 같이 변명을 하고 있다. 3T 383.1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배설하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간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가로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하나는 가로되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하나는 가로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하나는 가로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눅 14:16-21). 3T 383.2
이 비유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상태를 정확하게 나타낸다. 주님께서는 당신 스스로 큰 비용을 들여서 준비하신 만찬에 참석하라는 초청을 그들에게 보내셨다. 그러나 세속적 이익은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의 보화보다 더 중요하게 보였다. 그들은 영원한 가치를 지닌 사물에 동참하라는 초청을 받았으나 그들의 밭, 가축, 가정의 이익이 모든 거룩한 이익보다 더욱 압도적인 것이었으므로, 그것이 하늘의 초청에 순종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처럼 보였으며,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라는 하늘의 초청에 불순종하는 일에 대한 핑계거리가 되었다. 이 형제들은 이 비유 가운데 나타난 그 사람들의 본을 맹목적으로 따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세속적 사물을 보며, “아닙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저를 용납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말한다. 3T 383.3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 곧 “하나님께 속한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지를 보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바로 그 축복들을, 그들은 진리의 요구에 순종할 수 없다는 핑계거리로 이용한다. 그들은 그들의 세속적 보화를 팔로 꽉 끌어안으며, “나는 이것들을 돌봐야 합니다. 나는 이생의 사물들을 등한히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러한 이들의 마음은 단단히 다져진 대로처럼 감화를 받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들은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고 초청하는 하늘 사자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고, 자신의 마음 문을 열어 세속적 부담과 사업상 염려를 초청해 들임으로써, 예수께서는 들어가시기 위하여 헛되이 문을 두드리시게 된다. 3T 384.1
그들의 마음은 이생의 염려와 가시덤불이 너무나 무성하므로, 하늘의 사물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 예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당신께로 오면 쉼을 얻게 될 것이라는 약속으로 초청하신다. 그분은 그들을 재물의 노예로 만드는 이기심과 탐욕의 괴로운 멍에를 바꾸라고 초청하신다. 그분께서 말씀하시는 멍에는 쉽고 그분의 짐은 가볍기 때문이다. 그분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 (마 11:29) 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그들에게, 세상의 염려와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리고 자아 부정과 다른 사람들을 위한 희생의 멍에, 곧 그분의 멍에를 메기를 원하신다. 이 짐은 가볍다는 것이 판명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시는 휴식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고, 이기적 만족을 위하여 돈을 모으는 계획에 온 정신을 몰두하면서 계속해서 괴로운 이기심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지우신 자아 부정과 무아적 자선의 짐을 지는 중에 누리는 평안과 쉼을 경험하지 못한다. 3T 384.2
세상에 대한 사랑이 마음을 점령하고 지배적인 정열이 될 때, 하나님을 숭배할 여지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더욱 고상한 마음의 능력이 재물의 종이 되어 하늘이나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기억을 상실하고, 돈을 모으려는 생각으로 마음은 편협해지고 위축된다. 3T 385.1
이기심과 세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이 사람들은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사업의 중요성에 대해 점점 희미하게 인식하는 지경으로 들어간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교육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방면에 경험이 없다. 그들의 재물은 그들의 애정을 흡수했으며, 구속의 경륜의 웅장함을 잠식하였다. 그들의 세속적 계획은 증진되고 확대되는 한편, 그들은 하나님의 사업을 확대하고 확장할 필요를 깨닫지 않는다. 그들은 재물을 일시적 사물에 투자하고 영원한 사물에 투자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은 좀더 많은 재물을 얻으려는 야망으로 차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신의 율법의 저장소로 삼으셔서, 그들에게 그처럼 은혜롭게 주어진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염려와 걱정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력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할 시간, 곧 이웃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들과 함께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진리의 지식 안으로 인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시간을 갖지 못한다. 3T 385.2
이런 사람들은 그들이 할 수도 있었으나 그들의 마음을 빼앗고 애정을 사로잡은 세상의 염려와 걱정 때문에 그들이 회피한 선 (善) 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노력과 거룩한 모본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도 있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빛, 곧 다른 사람들의 행로에 반사되도록 주신 빛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귀한 영혼들이 멸망해 가고 있다. 그러나, 고귀한 빛은 말 아래 감취어져 집안에 있는 자들에게 비추이지 못하고 있다. 3T 385.3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이다.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당신의 재물을 위탁하셨지만, 사람은 그 재물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눅 19:13) 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의 것을 그 이자와 함께 요구하실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분은 당신의 모든 청지기에게“네 보던 일을 셈하라” (눅 16:2) 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의 돈을 취리하는 자에게 내어 주는 대신 수건에 싸서 땅에 감춘 자들과, 주님의 돈을 주님의 사업에 투자함으로 이를 남기지 않고 불필요한 것들을 위하여 사용함으로써 낭비한 자들은 주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결정적으로 단죄될 것이다. 비유 중에 있는 무익한 종은 그 한 달란트를 하나님께로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그는 말하였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속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그의 주인은 그의 말을 받아 말하였다.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마 25:24-27). 3T 385.4
이 무익한 종은 하나님의 계획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위탁된 달란트를 증가시키라는 그분의 요구가 불공평하다고 비난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좌절시키고자 단호히 결심하였다. 바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부류의 부자들이 이와 같은 원망과 불평을 하고 있다. 불성실한 종처럼, 그들은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그 달란트의 증가가 진리를 확장시키는 데 요구될까 두려워 그것을 세상의 보물에 투자하거나 세상에 묻어 둠으로써 그것을 얽어매되 너무 강하게 매었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할 것이 전혀 없거나 거의 없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본전이나 이자 가운데서 얼마를 요청하시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그것을 파묻었다. 주님께서 그것을 요구하실 때, 그들은 그들에게 주어진 양을 가져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주신 재물을 취리하는 자들에게 주지 못한 사실, 곧 하나님의 사업을 수행하도록 그분의 사업에 투자하지 못한 사실에 대해 배은 망덕의 마음으로 변명했다. 3T 386.1
하나님의 재산을 유용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빌려주신 재물뿐 아니라 영생도 잃어버린다. 그에 대해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마 25:30) 는 말이 주어진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업에 자기의 돈을 투자한 충성된 종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의 재물을 사용하게 되므로 주님의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1). 우리 주님의 이 즐거움은 어떠한 즐거움이 될 것인가? 그것은 구원을 받아 영광의 왕국으로 들어온 영혼들을 보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3T 387.1
청지기에 대한 개념은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과 실제적인 연관을 맺어야 한다. 달란트의 비유가 올바르게 이해되기만 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라고 지적하신 탐욕을 몰아내게 될 것이다. 실제적 자선은 오늘날 자신의 흑암을 인해 울고 있는 수많은 형식상 진리의 공언자들에게 영적 생명을 줄 것이다. 그것은 이기적이며 탐욕적인 재물 숭배자의 위치에서, 죄인을 구원하는 일에 있어서 열성적이며 충성스런 그리스도의 동역자로 변화시켜 줄 것이다. 3T 387.2
구속의 경륜의 기초는 “희생” 위에 세워졌다. 예수님은 당신의 가난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하늘의 궁정을 떠나셔서 가난하게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그처럼 무한한 희생으로 사신 바 된 구원에 참여하는 자들은 모두 참된 귀감 (龜鑑) 되신 분을 본받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주된 모퉁잇돌이 되시므로, 우리는 이 기초 위에 세워져야 한다. 각 사람은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생애는 이타적이었고, 겸손과 희생으로 특징지어졌다. 예수께서 하늘에서 오셔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한 큰 구원에 동참한 사람이 그들의 주님을 따르기 싫어하고 그분의 자아 부정과 희생에 동참하기를 거절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5),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요 15:2). 바로 그 생명의 원리, 곧 포도나무를 통하여 흐르는 진액이 가지를 무성하게 하고 열매를 맺도록 양분을 공급한다. 종이 자기의 상전보다 크겠는가! 세상의 구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아 부정과 희생을 치르셨는데,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은 방종해야 하겠는가? 자아 부정은 제자가 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3T 387.3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나는 자아 부정의 길로 인도한다. 나를 따르는 자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그대들의 주가 되는 내가 내 자신의 생애로써 그대들에게 세워 놓은 모본을 따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3T 388.1
세상의 구주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분은 인간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 보여 주시기 위하여 승리하셨다. 그분은 나사렛의 회당에서 선포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 19). 3T 388.2
예수께서 하시기 위하여 오셨노라고 선포하신 그 위대한 사업은 땅위에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위탁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머리로서 구원의 위대한 사업에서 앞서 인도하시며, 우리에게 당신의 모본을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세계적인 기별을 주셨다. 이 진리는 모든 나라와 방언과 백성에게 전파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또한 그분을 따르는 자들은 사단의 능력을 대항해서 싸워야 하며, 사단을 정복해야 한다. 흑암의 세력을 대항하는 방대한 전쟁은 계속되어야 하였다.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해서 자금이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직접 자금을 보내도록 계획하지 않으시고,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손에 이 싸움을 계속하는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도록 자금의 달란트를 주신다. 3T 388.3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당신의 사업이 스스로 유지되기에 충분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셨다. 십일조 제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은 그 단순함과 공정함에 있어서 아름답다. 모든 사람은 믿음과 용기로써 그 제도를 유지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근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단순성과 유용함이 결합되어 있으며, 그것을 이해하고 실행하는 데는 깊은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모든 사람은 고귀한 구원의 사업을 추진하는 일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모든 남녀들과 청년들은 주님을 위한 회계원이 되어, 자금에 대한 요구에 응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 (고전 16:2) 라고 사도는 말한다. 3T 388.4
이 제도를 통해서 큰 목적이 성취된다. 만일, 개인이, 그리고 모두가 이 제도를 받아들인다면, 각자는 하나님을 위한 주의 깊고 충성스러운 회계원이 될 것이며, 세상의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위대한 사업을 수행해 나갈 자금이 결핍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만일, 모두가 이 제도를 채택한다면, 금고는 가득 차게 될 것이며, 헌금을 바치는 이들이 더욱 가난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들이 한 모든 투자를 통해서 그들은 현대 진리의 사업에 더욱 밀접하게 결속될 것이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딤전 6:19). 3T 389.1
인내성 있고 조직적인 일꾼들이, 그들의 자선적 노력의 경향이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며 그들의 개인적 노력이 그들의 유용성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것임을 볼 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는 것이 큰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교회는 일반적으로 세상에 범람하고 있는 도덕적 흑암을 대항하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기 위하여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을 드리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부인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활동적이고 열성적인 일꾼이 되기 전에는, 하나님의 사업은 마땅히 발전되어야 할만큼 발전될 수 없다. 3T 389.2
교회에 속한 모든 신자는 자신이 공언하는 진리가 실제적인 것임을 느껴야 하며, 모든 사람들은 무아적 일꾼이 되어야 한다. 어떤 부자들은 하나님의 사업이 확장되고 돈이 요구되므로 불평을 하는 것 같다. 그들은 재물을 요구하는 데 끝이 없다고 말한다. 한 일, 다음에 다른 일이 또 생겨서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한 사람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사업이 더욱 발전함으로 그 사업을 수행할 자금의 공급을 요청하는 더 많은 기회와 더욱 긴급하고 빈번한 요구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고 싶다. 3T 389.3
만일, 조직적인 헌금 제도가 모든 교인들에 의하여 채택되어 충분히 수행될 것 같으면, 금고에는 계속적인 자금의 공급이 있게 될 것이다. 수입은 마치 변함없는 강물처럼, 넘쳐 흐르는 자선의 샘에서 흘러 들어와서 공급될 것이다. 자선은 복음 신앙의 일부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불된 무한한 값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힘을 주님의 사업에 헌신하여야 할 요구는 물론, 엄숙한 금전상의 의무를 느끼지 않는가? 3T 389.4
머지않아 주님께서 “네 보던 일을 셈하라” (눅 16:2) 고 말씀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해결해야 할 빚을 갖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제쳐놓고 그분께서 베풀어 주신 것을 움켜쥐고 이기적으로 그것을 고수한다면, 그분은 얼마 동안 평화를 유지하시고 흔히 그분의 관대함을 증가시키시고, 축복을 흘러 넘치게 하심으로써 계속하여 그들을 시험하신다. 이들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교회의 책망 없이 지나갈는지 모른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분께서는 “네 보던 일을 셈하라” 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 25:45) 고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며, 그분의 소유가 되는 그대의 몸과 마음은 물론 그대의 재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의무가 그대에게 있다.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를 지불하고 “너희는 값으로 산 것” 이다. 그분은 우리에게 위탁하신 선물을 돌려 드림으로써 영혼 구원의 사업을 돕도록 요구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보혈을 주시고, 우리의 은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부요해진 것은 그분의 가난을 통해서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의 선물을 되돌려드리는 일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3T 390.1
하나님은 당신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섭리로 하늘에서 직접 그분의 금고에 공급하는 것이 인간을 위하여 최선의 길임을 보셨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인간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세상을 위한 진리를 공포하기 위하여 천사들을 보내실 방편을 고안하셨을 것이다. 그분은 하늘에 진리를 기록하여, 그것이 살아 있는 글자로서 그분의 요구를 세상에 선포하게 할 수도 있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금이나 은에 의존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삼림의 짐승들과 천산의 생축이 다 내 것이며 …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않을 것은 세계와 거기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시 50:10, 12) 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서 우리의 봉사가 필요한 곳은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길을 의도적으로 준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당신의 동역자로 삼으심으로써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다. 그분은 사람들이 계속적으로 자선의 활동을 하게 하시고자 사람들 사이에 협력이 필요하도록 정하셨다. 3T 390.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현명한 섭리로써 가난한 자들을 언제나 우리 곁에 두셨으며, 우리가 세상의 여러 가지 형태의 궁핍과 고난을 목격할 때, 우리는 시험을 받고 입증을 받으며, 그리스도인 품성을 계발할 수 있는 입장에 놓이게 된다. 그분은 우리에게서 그리스도인 동정과 사랑을 발휘하게 하고자 가난한 자들을 우리 가운데 두신다. 3T 391.1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해 가는 죄인들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진리의 빛을 전해 주지 않는 한, 무지와 흑암 가운데 남아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일을 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천사들을 보내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모든 사람들에게 할 일을 주셨는데, 그 핵심적인 이유는 그분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진정한 성격을 드러내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당신의 대표자로 우리 중에 두신다. 그분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 (마 25:42) 다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고통을 당하는 인간, 고난중에 있는 인간 자녀들의 입장에서 그들과 동일시하신다. 그분은 그들의 필요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시며, 그들의 불행을 당신의 품에 안으신다. 3T 391.2
황폐한 세상의 도덕적 흑암은 그리스도인 남녀들에게, 무한한 부를 소유하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분의 형상을 닮기 위하여 그들의 재물과 영향력을 드리는 일에 개인적 노력을 기울이라고 호소한다. 성령께서는, 그분의 진리의 기별을 보내셨으나 강권함을 받아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동역자의 의무를 느낄 수 있는 자들과 함께 거하실 수 없다. 감정은 변덕스러우므로, 단지 인간적 동정심에서가 아니라 보다 고상한 근거에서 주어야 할 의무를 사도는 강조한다. 그는 우리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이기심 없이 수고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강조한다. 3T 391.3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인간들의 구원에 계속적인 관심을 나타내는 활동적인 자선의 계획을 시작하라는 요구를 성경을 통하여 받고 있다. 도덕적 율법은 안식일 준수를 명하고 있지만, 계명은 그것을 범하는 경우나 그것을 범함으로써 받는 형벌에 의해 속박받는 경우 이외에는 짐이 아니었다. 십일조 제도 역시 그 계획에서 떠나지 않은 자들에게 짐이 되지 않았다. 히브리인들에게 명령한 이 제도는 그것을 창시하신 분에 의하여 폐지되거나 완화되지 않았다. 현재 효력을 전적으로 상실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은 그리스도인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만을 통한 구원이 더욱 충만한 빛으로 드러남에 따라 더욱 충실하게 수행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3T 392.1
예수께서는 율법사에게, 영생을 얻는 조건이 계명의 특별한 요구를 자신의 생애에서 실천하는 것이라고 알려주셨는데, 그 계명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표상적 제사 제도가 폐지되었을 때에도 돌비에 새겨진 본래의 계명은 각 시대를 통하여 그것을 지키도록 요구하면서 변함없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 시대에도 인간의 의무는 제한되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세밀하게 정의되고 단순하게 표현되었다. 3T 392.2
넓게 퍼져 나가는 진리는 그리스도의 사망 후에 싸움을 지속하기 위하여 더욱 큰 준비를 요구하였고, 이 때문에 자선의 법은 히브리 국가때보다 더욱 긴급하게 필요되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어느 시대 못지 않게 더욱 큰 선물을 요구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원리는 선물과 헌물이 받은 빛과 축복에 비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분은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눅 12:48) 고 말씀하셨다. 3T 392.3
그리스도교 시대의 축복을 받은 처음 제자들은 구제와 자선을 통하여 반응을 나타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신 후에, 성령이 내리심으로 제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의 사람이 되었다. 바울은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이 고통중에 있을 때 자선 사업에 대하여 이방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 하였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고후 8:7). 여기에서, 자선은 믿음과 사랑과 그리스도인의 근면과 어깨를 같이하고 있다. 스스로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너그러움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청에 귀와 마음을 닫는 자들은 두려운 기만에 빠져 있다. 진리를 지극히 사랑하노라는 공언의 말을 떠벌리기 좋아하고, 진리가 전파되는 일에 흥미가 있다고 말로만 표현할 뿐, 그 일을 위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 그러한 자들의 믿음은 죽은 것이며, 행함으로 온전해지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영혼을 회심시키되 탐욕의 세력 아래 그대로 남겨 두는 그러한 실수는 결코하지 않으신다. 3T 392.4
십일조 제도의 근원은 모세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확실한 제도가 모세에게 주어지기 이전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종교적인 목적으로 하나님께 헌물을 바치는 것이 요구되었으며, 그 근원은 멀리 아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그들은 그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헌물로 나타내어야 했다. 이 일은 이어지는 세대를 통해서 계속되었으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아브라함에 의해 실천되었다. 동일한 원칙이 욥의 시대에도 존재하였다. 돈 한 푼 없는 방랑자로 도망하는 중이었던 야곱이 한밤중에 벧엘에서 돌을 베개하고 쓸쓸하게 혼자 누워 있을 때, 그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 28:22) 라고 주님께 약속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바치도록 강요하지 않으신다. 그들이 드리는 모든 것은 자원해서 드리는 것이어야 한다. 그분은 당신의 창고가 마지못해 드린 헌물로 채워지게 하지 않으실 것이다. 3T 393.1
주님께서는 사람이 이기심을 단절시키고,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강화시키는 행동을 하도록 의무를 지워 주심으로써 그를 당신 자신과 동료 인간에 대한 동정과 사랑에 밀접하게 연관되게끔 계획하셨다. 자선의 체계적 계획은, 이기심으로 기울어지며 관대한 행동에 대하여 마음을 닫기 쉬운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마련되었다. 주님은 헌금이 정기적인 것이 되기를 바라시며, 드리는 것이 습관이 되고 자선이 그리스도인의 의무로 느껴지도록 계획하셨다. 하나의 헌물을 통하여 열려진 마음이 이기적으로 냉랭해지고 닫혀지기 전에 또 다른 헌물이 드려져야 한다. 그 흐름은 계속적이어야 하며, 자선의 행동에 의하여 그 통로는 계속 열려 있어야 한다. 3T 393.2
요구된 분량에 관한 한, 하나님께서는 이득의 십분의 일을 정하셨다. 이 제도는 인간의 양심과 자선에 맡겨져 있으며 이 십일조 제도에 대해 인간의 판단은 자유로워야 한다. 이 제도는 자유롭게 양심에 맡겨져 있는 한편, 한 계획이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제시되었다. 전혀 강요가 요구되지 않는다. 3T 394.1
하나님께서는 모세 시대에 모든 이득의 십분의 일을 바치도록 요구하셨다. 그분은 이생의 사물과 달란트를 증가시켜 그분께 돌리도록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그분은 십분의 일을 요구하시되, 이것을 인간이 그분께 돌려드릴 최소한의 것으로 요구하신다. 그분은 내가 내 것인 십분의 일을 요구하는 한편, 너희에게 십분의 구를 준다고 말씀하신다. 인간이 십분의 일을 드리지 않을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게 된다. 속죄 제물, 화목 제물, 감사 제물 등이 이득의 십분의 일 외에 추가로 요청되었다. 3T 394.2
하나님께서 요청하시는 이득의 십일금을 드리지 않는 모든 행위는 하늘의 책에 그 행위자가 도적질한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한 자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것을 사취하게 된다. 이러한 태만의 죄가 저들 앞에 지시될때, 그들이 행로를 바꾸고 그때부터 올바른 원칙을 따라 행하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않다. 이것은 채주에게 돌려지도록 그들에게 위탁된 재산을 유용한 하늘 기록의 숫자를 바로잡을 수 없다. 하나님과의 불층실한 거래와 배은망덕의 죄를 회개할 필요가 있다. 3T 394.3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8-10).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이면, 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부어질 것이라는 약속이 여기에 주어져 있다. 3T 394.4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 3:11, 12).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십일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요구에 응한다면, 창고에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큰 사업을 진행시킬 재물이 풍성하게 공급될 것이다. 3T 395.1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인간 자신의 일을 위하여 엿새를 주시고 제칠일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두신 것처럼, 사람들에게 십분의 구를 주시고 십분의 일은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요구하신다.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수입의 십분의 일 역시 거룩하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셨다. 그분은 인간에게 맡기신 재물의 수입을 통해서 땅위의 그분의 사업을 추진시키실 것이다. 3T 395.2
하나님께서는 옛날 당신의 백성들에게 매년 세 번씩 회집하도록 요구하셨다.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 (신 16:16, 17). 그들의 수입의 삼분의 일 이상이 거룩한 종교적 목적에 바쳐졌다. 3T 395.3
역사상 어떤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백성이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조직적 자선과 헌물과 연보 제도를 실천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하는 것과 비례하여 그들의 모든 활동에 번영이 따를 것이라는 불변의 약속을 깨달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고 그분의 요청에 응함으로, 그들의 물질로써 그분을 영화롭게 할 때에, 그들의 창고는 풍성하게 채워졌다. 그러나 그들이 십일조와 헌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할 때, 그들은 하나님뿐 아니라 자신들의 것도 도적질하게 되었음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물을 제한한 것에 비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실 축복을 제한하셨기 때문이다. 3T 395.4
어떤 이들은 이 제도가 히브리인들을 얽어맨 엄한 율법 중 하나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을 사랑하였던 자원하는 심령의 사람들에게는 짐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영원한 관심사를 잃어버리고 그들이 땅위에서 가진 보화를 영혼들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 것은 하나님께 드리지 않음으로 저들의 이기적 본성을 강화했을 때 뿐이었다. 이 마지막 때의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는 고대의 이스라엘에게 보다 더 긴급한 요구가 주어져 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성취되어야 할 크고 중요한 사업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금 제도가 당신의 백성에게서 결코 소홀히 여김을 받도록 계획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마지막 사업을 위해 희생 정신이 확대되고 깊어지도록 계획하셨다. 3T 396.1
조직적인 자선은 조직적인 강요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헌물은 자원하는 헌물이다. 참된 그리스도인 자선은 감사하는 사랑의 원칙에서 흘러나온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그분이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신 사람들에 대하여 나타내는 사랑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은 모든 정서를 지배하고 모든 정력을 지도하는 전인적 (全人的) 인 지배 원칙이 되어야 한다. 구속의 사랑은 인간의 마음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부드러운 애정과 자아 희생적인 헌신을 일깨워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이기심을 깨뜨리고 잠자는 동정심을 깨우쳐서, 귀중한 진리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의 헌물을 드리게 하고자 마음을 감동시키는 호소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3T 396.2
예수께서는 무한한 희생으로 우리를 사셨다. 우리의 모든 능력과 영향력은 진정으로 우리 주님의 것이며, 그분을 섬기는 데 바쳐져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죄의 속박에서 속량받은 감사의 마음을 나타내게 된다. 우리 주님은 언제나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 그분은 하늘로 승천하셔서 당신의 피로 산 사람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상처난 손을 드시고, 당신의 교회가 시험에 빠지지 않고 보존되도록 당신의 교회를 위하여 중보하신다. 3T 396.3
만일, 우리의 지각력이 일깨워져서 우리의 구원을 위한 우리 주님의 놀라운 사업에 동참할 수 있다면, 깊고 열렬한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불태울 것이다. 우리의 무정함과 냉랭한 무관심이 우리를 경고하게 될 것이다. 감사로 충만한, 사랑으로부터 우러난 온전한 헌신과 자선은 지극히 작은 헌물, 자원하는 희생에 거룩한 향기를 더하여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중한 예물이 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드릴 수 있는 모든것을 자원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구속주께 드렸을지라도, 비록 그것이 우리에게 매우 가치 있는 것일지라도,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진 감사의 빚을 사실 그대로 볼 수 있다면, 우리가 드린 모든 것은 우리에게 매우 불충분하고 보잘것없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천사들은 우리에게 보잘것없이 보이는 이 예물을 취하여 향기로운 예물로 보좌 앞에 드리게 되며 그것은 가납된다. 3T 396.4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우리의 진정한 위치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고용된 종으로서 우리의 책임에 대해 올바른 견해를 갖고 있지 못하다. 그분은 당신의 고난의 생애와 흘리신 보혈로써 우리에게 삯을 미리 지불하심으로 당신 자신을 섬기도록 우리를 붙들어 매셨다.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은 우리 구주로부터 빌린 것이다. 그분은 우리를 청지기로 삼으셨다. 믿음과 사랑으로 드린 우리의 가장 작은 헌물과 가장 비천한 봉사는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한 헌신의 예물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관심과 번영은 모든 관심사를 능가하여야 한다. 쾌락과 이기적 관심을 생애의 주된 목적으로 삼는 자들은 충성스러운 청지기가 아니다. 3T 397.1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기 위하여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그리스도의 봉사 사업에 드리는 자들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행복을 발견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생애를 특징지은 무아적 사랑과 자선의 열매이다.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율법은 우리 자신의 관심을 고상하고 영원한 관심사에 굴복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라고 명령하신다. 이것이 우리의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의무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에게 지상에 보화를 쌓아 두지 말라고 명백하게 경고하셨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마음이 하늘의 사물보다 땅위의 사물에 머무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가련한 영혼들이 믿음의 파선을 맛본 곳이다. 그들은 우리 주님의 명백한 명령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길을 따랐으며, 돈에 대한 사랑이 그들의 생애에서 지배적 정열이 되도록 허용하였다. 그들은 재물을 얻는 노력에 있어서 절제하지 않는다. 그들은 알코올 중독자가 술에 중독되듯이 부를 향한 그들의 비정상적인 욕망에 중독된다. 3T 397.2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주님의 종이라는 사실과, 그들 자신과 그들의 시간과 그들의 모든 소유가 그분께 속한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이 그들의 돈을 금전상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곳에 투자하도록 제시하는 기만적 유혹에 미혹당하며, 대다수가 거기에 정복된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에 유의하여 그분의 사업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우선적 사업으로 삼고, 그들의 욕구를 채우는 것을 마지막 일로 삼는다. 그들의 재물에 비례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는 이들이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돈을 부동산에 붙들어 매어 놓았으므로, 하나님의 사업에 투자하여 실제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팔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이 사실을 그들의 구속주의 사업에 거의 바치지 못하는 데 대한 변명 거리로 삼는다. 그들은 비유에 나온 사람처럼 그들의 돈을 효과적으로 땅에 묻어 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것으로 요구하시는 십분의 일을 도적질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늘 보화에 속한 자신의 것들을 도적질한다. 3T 398.1
조직적인 자선의 계획은 어느 한 사람도 무겁게 압박하지 않는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전 16:1, 2). 가난한 자들도 주는 특권에서 제외되지 않는다. 부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이 사업에서 한몫을 감당할 수 있다.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 주신 교훈은, 가난한 자들의 가장 적은 예물이라도 사랑의 마음으로 드려진 기꺼운 예물이면 부자의 가장 많은 헌금과 마찬가지로 받으시는 바 된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3T 398.2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으로 드려진 가난한 자들의 예물은, 성소의 저울에서 드려진 양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희생을 유발한 사랑에 의하여 계량될 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은, 풍부한 데서 드리는 부자에 의한 것과 마찬가지로, 드릴 것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나 그 적은 것을 기꺼이 드리는 가난한 사람에 의해서도 분명히 실현될 것이다. 가난한 자는 그가 가진 적은 것을 희생하되, 그 희생을 진정으로 느끼게 된다. 부한 자는 풍부한 중에서 드리므로 부족도 느끼지 않고 그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버리지 않지만, 가난한 자는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희생한다. 하나님의 섭리로,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모든 체계적 자선의 계획이 마련되었다. 그분의 섭리는 결코 중단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종들이 공개된 그분의 섭리를 따를 것 같으면, 모든 사람들이 활동적인 일꾼이 될 것이다. 3T 398.3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기를 거절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자들은 자녀들의 영적 복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거치는 장애물이 되는 재물을 자녀들의 앞길에 놓는다. 자녀들은 그것에 걸려 넘어져 멸망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생의 사물에 대하여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준 재물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선한 것들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절약함으로써 이기적이요 탐욕스런 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지도 못할 부를 쌓아 두기 위하여 그들의 영적 복리를 등한히 하므로 신앙적 성장이 위축된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는데, 십중팔구 그 재물은 그들에게 저주가 되었던 것보다 상속을 받는 자들에게 더 큰 저주가 된다. 부모의 재물에 의존하는 자녀들은 흔히 이생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내세에서의 생명을 확보하는 일에도 완전히 실패한다. 부모들이 저들의 자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선의 유산은, 유용한 노동에 대한 지식과 사심 없는 자선으로 특징 지워진 생애의 모본이다. 그러한 생애를 통하여 그들은 돈의 참가치를 깨닫게 된다. 돈은 오로지 자신의 부족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킴으로 성취되는 선을 이룰 때에만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3T 399.1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소유에 따라서 기꺼이 바치되, 그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수입은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나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따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체와 정신의 능력이 사용되도록 계획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진시키지 않았다. 노동은 사람에게 지정된 것이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저주와 연결되었다. 인간의 지덕체의 복리에는 유용한 노동의 생애가 필요하게 되었다. 영감 받은 사도 바울은 “게으르지 말라” 고 권면한다. 3T 400.1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간에 게으른 생애로써는 아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자본은 시간과 육체적 힘인데 흔히 안일을 사랑하고 부주의하고 게으름으로 인해 그것이 낭비되었으므로, 십일조와 헌물로 주님께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노동할 지혜가 모자라고 그들의 심신의 능력을 현명하게 이용할 지혜가 결핍되어 있다면, 그들의 형제들의 판단과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온유와 겸손을 소유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더욱 훌륭한 판단을 통해서 저들 스스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료 인간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만족하고 있는 많은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할 마음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한 자들이 그들의 자본인 재물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의 자본이 되는 육체적 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3T 400.2
하나님의 창고에 재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거기에서는 받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특허권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꾸준하고 힘든 노동보다 더 편안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자 골몰하는 그들의 성향을 억제함으로써 현재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성공적인 생애를 못한 자들이 기꺼이 지도를 받는다면 그들은 자아 부정과 엄격한 절약으로 자신을 훈련시키고, 자선의 혜택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주는 자의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게으른 종들이 많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큰 축복을 경험함으로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는 말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3T 400.3
올바로 발휘된 자선은 사람의 정신적·도덕적 힘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궁핍한 자를 축복하는 일에 가장 건전한 활동을 하게 한다. 재물을 가진 자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푼돈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다. 만일 양심이 깨우쳐진다면, 그 양심은 식욕, 교만, 허영, 쾌락에 대한 사랑 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쓸데없이 사용한 돈에 대하여 증거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사용되었어야 할 주님의 돈을 낭비한 사실을 보고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재물을 낭비하는 자들은 머지않아 주님 앞에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3T 401.1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이 몸을 치장하고, 집을 꾸미고, 허세를 부리고, 식탁 위에 건강을 해치는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는 데 돈을 덜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많은 돈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늘과 부와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어 우리로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신 우리의 구속주를 닮게 된다. 우리가 너무 가난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성실하게 드릴 수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너무 가난하여 값비싼 옷을 입고 사치스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해로운 방종에 주님의 돈을 낭비하게 된다. 우리는 하늘 왕국에 어떠한 보화를 확보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한가? 라고 성실하게 자문하여야 한다. 3T 401.2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탐욕에 대하여 하나의 교훈을 하셨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1). 3T 401.3
인생의 장수와 행복은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한 재물의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재물을 스스로를 위하여 쌓아 두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다. 그는 장사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고, 철저하게 에누리를 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는 증가하는 세상 재물에 덧붙이기 위하여 고아와 과부의 것을 도적질하고, 동료 인간들에게서 사취하였다. 그는 해어지지 않는 하늘의 전대에 그의 보물을 쌓을 수도 있었으나 이기심 때문에 두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겸손하게 사용한 자들은 머지않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층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3) 는 축복과 함께 주님의 손으로부터 그들의 보물을 받게 될 것이다. 3T 402.1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진 무한한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 아우성을 칠 때, 또한 선한 사업에 있어서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을 거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그들은 하늘의 무한한 보화로 부요하셨던 분께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게 되셨음을 생각하고 올바른 원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분에게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이 모든 희생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3T 402.2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제자들이 최종적으로 당신과 함께 높임을 받으려면 반드시 걸어가야 할 자아 부정과 희생의 길을 친히 걸으셨다. 그분은 인간이 당해야 할 슬픔을 당신의 마음으로 당하셨다. 세속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흔히 둔하여진다. 그들은 오직 하늘의 사물의 영광과 가치를 가리우는 지상의 사물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이득을 위하여 지상과 해상을 두루 다니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난과 고난을 참아내지만, 하늘의 매력에서는 돌아서며 영원한 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적은 소유에서 관대하게 드린다. 그들은 계속적인 관대한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후한 추진력을 강화시킨다. 수입에 빠듯하게 지출이 이루어질 때, 이 땅의 부를 향한 정열은 발붙일 여지와 기회를 얻지 못한다. 3T 402.3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땅위의 부를 모으기 시작할 때, 그들이 특정한 금액을 모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자신을 위한 부를 쌓고자 염려하는 중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하게 되지 못한다. 그들의 자선은 그들의 재물의 축적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는다. 부를 향한 그들의 정열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애정은 그들의 보화에 얽매인다. 재산의 증가는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열렬한 욕구를 강화하여,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심하고 불공평한 세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감의 말씀은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시 62:10) 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만일 아무개처럼 부하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여러 배의 예물을 드릴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만 나의 재물을 사용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어떤 이들을 부하게 하심으로 시험하셨다. 그러나 부와 함께 더욱 격렬한 시험이 이르러 오자, 그들의 자선은 그들이 가난할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더 큰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었다. 3T 403.1
충성스런 인간의 상급으로 무한한 부와 당신의 나라에서의 영생의 축복을 인간들에게 제시하시는 분께서는 나뉘어진 마음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떠나게 하고 애정을 분리시키는 말세의 위기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비쳐 오는 빛을 바라볼 때만 분별될 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을 향하여 지나가면서 온 세상을 빛으로 채우듯이,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그는 그에게서 발산되는 빛줄기에 의하여 흑암에 놓인 자들이 빛과 온기를 받도록, 밝고 빛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신다. 3T 403.2
우리의 크신 모본자께서는 자아를 부정하셨는데,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행동 노선이 그분의 것과 현저하게 대조적이어야 하겠는가? 구주께서는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하여 당신 자신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의 교회는 잠자고 있다. 그들은 무활동으로 인하여 약화되어 있다. 세상의 여러 곳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 는 음성이 우리에게 쇄도하고 있으나, 이에 반응하는 행동이 없다. 때때로 연약한 노력만이 기울여지고 있을 뿐, 소수만이 그들의 주님과 동역자가 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혼히 그러한 자들의 경우에도 거의 홀로 애쓰도록 방치되어 있다. 이 모든 외국의 넓은 일터에, 우리 백성들로부터 한 명의 선교사밖에 없다. 3T 404.1
진리는 강력하나 실천되지 않고 있다. 제단에 헌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할 지원자 곧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에게 현저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은 우리의 수효나 부가 아니라 사업에 대한 헌신, 도덕적 용기,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 지칠 줄 모르고 쇠하지 않는 열심이다. 3T 404.2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다는 이유로 유대 백성을 동정 받아야 할 백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가 누리는 모든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그에게 최선인지를 아셨다. 그분은 당신의 축복을 통하여 인간의 십 분의 구를 당신의 축복이 결여된 전체의 금액보다 더욱 그들에게 가치 있게 하셨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불완전한 헌물을 가져간다면, 재앙과 손실이 분명히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기를 읽으신다. 그분은 사람들의 목적을 아시며, 당신께서 보시기에 적당한 때에 사람들이 받을 만한 대로 보상하실 것이다. 3T 404.3
십일조를 드리는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마찬가지로 견고한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이 제도는 또한 세상 끝 날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을 부요하게 하시고자 체계적인 자선 계획을 창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고안하셨다. 그분은 이 체계적인 자선이 바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임을 보셨다. 3T 404.4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체계적이고 관대한 교회들이 영적으로 가장 번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진정한 관대함은 자신의 관심을 주님의 그것과 일치시킨다. 유대인들과 마지막 때까지 있을 당신의 백성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분은 그들의 수입에 비례되는 체계적인 자선을 요구하신다.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쳐 오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며, 관대함과 자선을 격려한다. 드리라는 요청이 증가하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제한된 행동 영역에서 불러내어 더욱 큰 사업을 하게 하신다. 도덕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이 때에, 제한 없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에 속한 마음과 탐욕이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력을 잠식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재물에 대한 요구를 배가시키는 것이 그분의 자비임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자선 행위를 기도와 밀접히 연결시킨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라고 말하였다. 3T 405.1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1). 교회의 영적 건강과 번영은 체계적인 자선에 크게 좌우된다. 그것은 마치 신체 각부에 생명력을 공급하며 온몸으로 흘러가야 하는 혈액과 같다. 그것은 동료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그 영혼들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과 밀접해진다. 우리의 수효가 지금의 절반일지라도 그들이 모두 헌신한 일꾼들일 것 같으면, 세상을 흔들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활동적인 일꾼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고 말씀하셨다. 3T 405.2
우리는 이기적 동기, 고집, 편견에 의해 일어나는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굴의 용기와 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사단의 부하들은 만만찮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 그들과 더불어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 자신의 나라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터는 세계이며, 곡식은 무르익어 있다. 승천하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는 것이었다. 3T 406.1
우리 교역자들 중 어떤 이들이 외관상으로 약간의 노력만을 기울이며 그들의 노력에 대한 열매를 거의 거두지 못한 채 교회들을 맴도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일터는 온 세계이다. 그들로 하여금 믿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서 영혼을 진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업을 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독자를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모본을 제시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순종과 희생이 있다. 모세는 왕궁에 거했으며, 장래의 왕관이 그의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혹적인 뇌물에서 돌아서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3T 406.2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당할 가치가 있는 자로 인정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과 실라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채찍으로 맞고 감옥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가장 고통스러운 자세로 우악스럽게 던져졌으며, 그들의 발은 들린 채 차꼬에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간수들의 귀에 들렸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밤중의 정적을 깨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감옥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 제자들은 그들이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구주의 사업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사랑으로 격려되었다. 3T 406.3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애정을 흡수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 역시 진리를 위하여 고난받기를 기쁘게 여길 것이다. 어떤 감옥의 벽이나 순교자의 화형주도, 이 큰 사업에 가담한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3T 406.4
오, 내 영혼아, 갈바리로 오라 3T 407.1
하나님의 아들의 비천한 생애를 주목하라.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 (사 53:3) 였다. 그분이 당하신 치욕과 갈바리에서의 고뇌를 바라보고, 자아 부정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우리가 궁핍을 당하고 있는가? 하늘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난은 우리를 위함이었다. 우리는 부유한 자 중에 속하는가? 그분도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부요하게 되도록 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기로 응낙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 부정이 예시되었다. 그분의 희생은 그분이 하늘 궁정을 떠나 악한 자들에 의하여 범죄자처럼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으로 선고되고 범죄자로서 죽음에 넘기워진 데에만 단순히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짐을 지신 데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우리의 무관심과 냉정을 책망한다. 우리는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내어 내려온 세상 끝에 접근해 있다. 사단은 멸망해 가는 자들 가운데서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인도자께서는 우리가 활력을 가지고 그 싸움을 싸우도록 우리의 손에 그 투쟁을 맡기셨다. 우리가 만일 깨어 있었다면 성취했을 분량의 이십 분의 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생애를 통하여 모본을 보이신 자아 부정의 정신의 결핍과 안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업은 지연되고 있다. 3T 407.2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출판 사업은 축소될 것이 아니라 배가되어야 한다.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에 우리 청년들을 준비시키는 교육을 위하여, 곳곳에 학교를 세워야 한다. 3T 407.3
이미 상당한 시간이 낭비되었으며, 하늘의 천사들은 우리의 태만에 대한 기록을 하늘로 가져간다. 헌신하지 못한 채 졸고 있는 우리의 상태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우리를 도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귀중한 기회를 상실하였다. 오,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한나 모아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를 돕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 선교지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은 지금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다른 방언의 백성들에게 우리로 하여금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대처하도록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선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그분께서는 그를 우리 중에서 취하여 가셨다. 그는 이제 수고에서 벗어나 잠들어 있으나, 그의 자아 부정의 사업이 그를 따른다. 거대한 추수장에서, 다른 민족과 지방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결핍함으로 우리의 선교 사업이 지연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3T 407.4
우리가 깨어 있기만 했더라면 현재 우리가 소유하게 되었을 어떤 선물들을 우리가 상실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심령의 고통을 느낀다. 일꾼들이 희어져 무르익은 추수장으로 나아가는 일이 막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저들의 마음을 그분 앞에서 겸비히 하고, 가장 깊은 겸비로, 우리의 무정함과 이기적 방종을 용서해 주시고 태만히 한 의무와 활용하지 아니한 특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을 지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숙고하는 가운데, 그에게 아무런 희생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 그의 예물을 제한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과 같은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3T 408.1
가라, 내 포도원에서 일하라. 머지않아 쉼이 있으리 승천하시고자 할 때, 예수께서는 추수할 들판을 가리키시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8). 우리는 유실되고 있는 수확물을 거두기 위하여 자아를 부정할 것인가? 3T 408.2
하나님께서는 영향력과 재물의 달란트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순종하기를 거절할 것인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일부를 되돌려 주도록 요구하심으로 우리가 영생의 선물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시험하신다. 3T 40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