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귀의 결과로 생기는 가장 큰 죄악 중의 하나는 노동이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현대적인 관념이다. 선지자 에스겔은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겔 16:49)한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바로 여기에 태만의 두려운 결과가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태만은 마음을 약하게 하고 정신을 비열하게 하며 이해력을 혼란시키고 축복으로 주신 것을 저주로 만들어 버린다. 인생사에서 어떤 위대하고 선한 점을 발견하며 믿음과 소망으로 기꺼이 책임을 짊어지는 자는 일하는 남녀들이다. MYP 215.2
인생에 필요한 의무들을 만족히 여기고 부지런히 이행함에 대한 긴요한 교훈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자들이 배워야 할 교훈이다. 개척된 전도 지역에서 인정받는 선교사로 일하는 것보다도 기술자, 상인, 법률가 및 농부의 자격으로서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면서 기독교의 교훈을 생애의 일상 업무에 적용하는 데는 더욱 재능과 더욱 엄격한 품성의 단련이 요구된다. 일터와 사무실에서 신앙으로 일상 생애의 사소한 일들을 거룩하게 하며 모든 사업상 거래들을 하나님의 말씀의 표준에 의해서 처리하고 정비하는 데는 강한 신앙적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이다. MYP 215.3
사도 바울은 게으름을 죄로 인정하였다. 그는 장막을 만드는 일에 관하여 어떤 것이든지 골고루 배워두었으며 그가 전도하는 동안에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호구지책을 위하여 종종 이 직업에 종사하였다. 바울은 이렇게 사용된 시간을 손실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바울은 이런 일을 할 때에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접촉할 수가 없었던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기 동료들에게 일반 기술에 관한 자신의 기능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것을 증명해 보였다. 그는 매일의 근로 중에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쳤다. 노동으로 험해진 그의 두 손이 그리스도교의 목사로서 호소하는 감동적인 힘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았다. MYP 216.1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일하는 자가 되도록 계획하셨다. 짐을 지고 일하는 짐승은 게으른 인간보다도 더욱 잘 창조의 목적에 부응하고 있다. 하나님은 끊임 없이 일하시는 분이시다. 천사들도 일하는 자들이며 그들은 인간의 자녀들을 위하여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들이다. 하늘 나라에서는 일하지 않아도 되리라고 기대하는 자들은 실망하게 될 것인데 하늘의 제도에는 태만을 만족시키기 위한 장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피곤한 자들,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는 안식이 약속되어 있다. 그들은 일하는 가운데서도 주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초청을 받은 신실한 종들이다. 그는 즐거움으로 그의 갑옷을 벗을 것이며 갈바리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승리한 자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광스러운 안식처에서 전쟁의 소음을 잊어버릴 것이다.―부모와 교사와 학생에게 보내는 권면, 225-230. MYP 2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