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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 지 화잇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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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에서의 활동

    호주 합회 총회가 끝나자, 화잇 여사는 오랫동안 늦어졌던 뉴질랜드 방문을 하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비서이자 간호원으로서 그를 조력하는 에밀리 캠벨과 함께 갔다. 그의 아들 W.C.화잇과 스타 목사 부부도 많은 시간 동안 함께 있었다. LS 341.2

    2월 8일에 오클랜드에 도착한 그들은 M.C.이스라엘 목사를 만나, 오클랜드 교회가 그들의 임의대로 쓰도록 내준 설비가 잘 된 집으로 안내되었다. LS 341.3

    오클랜드 교회를 위해 12일간 열심히 일하면서 화잇 여사는 여덟 차례 설교하였다. 그 후에 화잇 여사는 뉴질랜드 최초의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인 카이오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함께 3주일을 보냈다. 이곳에서 그는 장래가 촉망되는 다수의 청년들을 발견하고 그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였다. LS 341.4

    화잇 여사는 오클랜드와 카이오 두 교회의 형제 자매들에게, 3월 말일 내피어에서 열릴 연례 집회에 가족과 함께 참석할 것을 촉구하였다. 이 집회는 적도 이남에서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처음으로 개최한 장막 부흥회가 될 것이었다. 이 경험에 대해 화잇 여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LS 341.5

    “우리는 이 첫 장막 부흥회가 가능한 한 미래에 개최될 모든 다른 장막집회가 이와 같아야 한다는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느꼈다. 나는 거듭거듭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히 8:5) …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LS 341.6

    그러나, 계획된 이 장막 부흥회에 관하여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불가능한 것 같았다. 통나무 막사나 도로 건설자를 위한 일단의 천막들은 별로 불편할 것이 없는, 잘 알려진 시설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모인 일단의 무리들을 위해 안락한 장막을 준비한다는 것은 뉴질랜드에서는 전혀 생소한 것이었다. LS 342.1

    재정적인 불황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는 것은 특히 어려웠다. 그 집회가 시작될 때까지, 30명 이상이 그 곳에 천막을 치고 야영할 수 있으리라는 가망이 거의 없었다. 30명 정도를 위한 천막은 준비되었다. 그러나, 막상 집회가 열렸을 때, 예고도 없이 각기 다른 교회 신자들이 몰려와 예상한 수의 두 배나 되었다. 집회의 마지막 주간에는 18개의 천막이 쳐져 53명이 사용했고,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 근처의 민가에 머물렀다. 내피어 교인들을 포함해서 이들은 낮 집회 동안 적당한 규모의 회중을 이루었다. 매일 저녁 그 커다란 천막은 입추의 여지도 없이 꽉 찼다. LS 342.2

    집회가 계속되면서 장막 부흥회 계획은 호응을 얻어 다음 연례 집회도 장막 집회로 모일 것을 결의하였다. 남양주 성경 학교를 승인하는 결의안이 채택되었으며, 자금이 헌납되었다. 비품 구입을 위해 5000 달러,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400 달러, 장막 부흥회 자금으로 270 달러가 기부되었다. LS 342.3

    화잇 여사는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피어 장막 집회가 끝난 후 우리는 웰링턴을 방문하기로 작정했고, 또한 도움을 요청하는 소수의 안식일 준수자들을 위해 일하려고 북 팔머스턴에서 며칠 유하기로 결심하였다. 비록 질병이 여전히 밤낮으로 나를 괴롭혔지만 주님께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주셨다. 때때로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고 느낄 때 나는 ‘믿음으로 백성들 앞에 나아가리라’고 말하곤 하였다. 이렇게 했을 때, 병마를 딛고 일어서서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기별을 전파할 충분한 힘이 생겼다.”LS 343.1

    웰링턴에서 화잇 여사는 M.H.턱스포드 부인의 집에서 환대를 받았고 그의 가정에서 여러 달을 보냈으며, 그 곳을 본부로 삼아 페톤, 오몬드빌, 댄버크, 북 팔머스턴, 기스본에 있는 적은 무리의 신자들을 방문하였다. LS 343.2

    호주로 돌아오기 전에 화잇 여사는 1893년 11월 30일-12월 12일까지 웰링턴의 조용한 교외에서 열린 2차 뉴질랜드 장막 집회에 참석하였다. 여기에는 전에 내피어 집회에 참석했던 수의 두 배나 되는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대총회장인 O.A.올슨 목사가 집회 초기에 도착하였고, 그의 수고와 시기 적절한 교훈은 말로 다할 수 없이 귀중한 것이었다. 그는 그가 최근에 방문한 광활한 선교 지역들로부터 유쾌한 보고를 가져왔다. 그는 복음 사업을 마치는 일에 봉사할 수 있도록 자신을 준비시키라고 젊은이들에게 호소하였다. LS 343.3

    화잇 여사는 올슨 목사와 다른 교역자들과 함께 웰링턴을 떠나, 호주에서 최초로 열리는 장막 부흥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둘러 멜버른으로 갔다. LS 3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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