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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 문서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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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편 출판 사업의 초기 역사

    1장 1848년 도체스터에서 본 이상과 우리의 최초의 출판 사업

    1848년 도체스터에서 본 이상* ― 1848년 11월, 매사추세츠 주의 도체스터에서 열린 집회에서 나는 인치는 기별을 선포하는 광경과, 우리의 길을 비추고 있는 빛을 출판하는 것이 형제들의 의무임을 보게 되었다.PM 15.1

    이상에서 깨어난 후 나는 남편에게 말하였다. “나는 당신에게 전할 기별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작은 간행물을 인쇄하여 백성들에게 보내야 합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읽고 인쇄할 수 있는 재정을 당신에게 보내 줄 것이므로 그 일은 처음부터 성공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미미한 시작이 온 세상을 뒤덮을 빛의 흐름이 될 것을 나는 보았습니다.”PM 16.1

    1849년 여름, 우리가 코네티컷 주에 사는 동안 나의 남편은 현대 진리를 기록하여 출판해야 할 때가 이르렀음을 절실히 느꼈다. 그가 이같이 결심했을 때 그는 용기를 얻었으며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돈이 한푼도 없었기 때문에 점차 의심하고 번민하게 되었다. 돈이 있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꼭 쥐고 내놓지 않았다. 그는 마침내 포기하고 실망하여 마초를 벨 초장을 찾아나서기로 결심하였다. PM 16.2

    그가 집을 떠났을 때, 나는 무거운 중압감에 눌려 기절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나를 위하여 기도하자 나는 축복을 받아 이상을 보게 되었다. 나는 일년 전에 나의 남편이 초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께서 축복하사 강건케 하셨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가 번 돈을 바르게 사용한 것과, 이생에서 백배나 보상을 받게 될 것과, 만일 신실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에서 풍성한 보상을 받게 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가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 때문에, 그가 초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주께서 힘을 주시지 않을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굳이 초장에 나가 일하려고 한다면 그가 앓아 눕게 될 것이므로 그는 마땅히 기록하고 기록하고 또 기록하며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것을 보았다. 그 후, 그는 즉시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그가 어떤 어려운 구절에 다다르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참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합심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PM 16.3

    현대진리 ― 7월 어느 날, 나의 남편은 그의 간행물 제1호 1천 부를 미들타운에서 집으로 가져왔다. 이 일이 진행되는 동안 그는 미들타운까지 8마일 길을 여러 번 걸어서 갔다오곤 했지만 이번에는 벨든*씨의 말과 마차를 빌려 인쇄물을 실어 왔다. PM 16.4

    그 귀중한 인쇄물을 집으로 들여다가 마루 위에 올려놓고, 우리는 거기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모으고 인쇄물 주위에 무릎을 꿇고, 주께서 이 인쇄된 진리의 사신 위에 당신의 축복을 내려 주십사고 겸손한 마음으로 많은 눈물을 흘리며 간구하였다.PM 17.1

    우리가 인쇄물을 접자, 나의 남편은 그것을 포장하고 그 위에 그것을 읽으리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의 주소와 성명을 기록해 가지고 그것을 융단으로 만든 가방에 넣어 미들타운에 있는 우체국까지 메고 걸어가서 발송하였다. PM 17.2

    7월, 8월, 9월 동안 미들타운에서 간행물의 제4호까지 인쇄하였다. 그것은 매 호마다 8페이지로 되어 있었다. 간행물을 우송하기 전에 우리는 항상 그것을 주님 앞에 펴놓고, 하나님의 축복이 이 말 없는 사신들 위에 임하기를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제1호를 발송한 지 얼마 되지 아니하여 우리는 간행물을 계속 발행할 수 있는 돈이 든 편지들과 많은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받게 되었다. PM 17.3

    출판 사업을 시작하였지만 우리는 진리를 설교하는 우리 본연의 임무를 중단하지 않고, 우리에게 그토록 위대한 진리의 빛과 기쁨을 가져다 준 교리를 선포하고, 오류를 교정하고, 교회의 질서를 확립하면서 이곳 저곳으로 두루 여행하였다. 출판 사업을 계속 추진하며 동시에 각 지방에서의 우리의 사업을 계속하기 위하여 간행물을 때때로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면서 발행하였다. PM 17.4

    뉴욕 주 오스웨고에서 인쇄함 ― 우리가 여행하던 10월과 11월에는 간행물이 결간되었다. 그러나 나의 남편은 계속 기록하여 출판해야겠다는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는 오스웨고에 셋집을 얻어 신자들에게서 가구를 빌려다가 살림을 시작하였다. 거기서 나의 남편은 저술하고 출판하고 설교하였다.*PM 17.5

    나의 남편은 오류를 옹호하는 자칭 재림신자들과 자주 싸워야 하기 때문에 매 순간 갑옷을 입고 있어야 하였다.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정확한 시기를 정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정한 시기가 그대로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와 우리가 가르치는 내용에 불리한 선입견을 갖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나는 순진하게 속은 자들은 언젠가 그들이 빠진 기만의 진상을 깨닫게 되어 다시 진리를 찾아오게 될 것을 보았다. ― 엘렌G.화잇 자서전, 118-121.PM 18.1

    난관에 직면한 출판 사업 ― 오스웨고에서 우리는 에드슨 씨 부부와 함께 센터포트로 가서 해리스 씨 집에 거처를 정하고. 거기서 애드번트 리뷰*라고 부르는 월간지를 출판하였다. PM 18.2

    우리 아이의 용태가 더 악화되었으므로, 우리는 그를 위해 매일 세 번씩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때때로 그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병세가 호전될 때도 있었지만, 그의 병세가 악화될 때에는 우리의 믿음이 혹심하게 시련을 당하였다. PM 18.3

    나의 심령은 크게 상심되었다. 이런 의문이 자꾸만 나를 괴롭혔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사 그를 건강하게 일으켜 주지 아니하시는가? 유혹하기 위하여 항상 준비되어 있는 사단은 우리가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속삭였다. 나는 내가 주님을 섭섭하게 해드린 일을 별로 생각해 낼 수 없었지만 중압감이 나의 심령을 짓눌러서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받아 주셨는지 의심되어 기도조차 할 수 없었다. 내게는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만한 용기도 없었다. 내가 극심한 마음의 번민으로 괴로워하자 마침내 나의 남편이 나를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였다. 그는 내가 그와 함께 목소리를 합하여 구원을 호소하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축복이 임하여 나는 소망을 갖기 시작하였다. 나의 떨리는 믿음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았다.PM 18.4

    그러자 사단은 다른 모양으로 접근해 왔다. 이번에는 나의 남편이 앓아 눕게 되었다. 그의 용태는 위중하였다. 그는 주기적으로 경련을 일으켰으며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였다. 그의 발과 발목은 차디찼다. 나는 힘이 빠져서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까지 발과 발목을 비볐다. 해리스 씨는 수마일 밖으로 일하러 갔으므로 해리스 씨 부인과 본포이 자매와 나의 언니 사라만 집에 있었다. 나는 간신히 용기를 내어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려고 하였다. 그때만큼 나의 무력함을 느낀 적은 일찌기 없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조처를 즉시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순간마다 나의 남편의 병세는 위독해졌다. 그것은 분명히 콜레라 증세였다. 그가 우리에게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우리는 거절할 도리가 없었다. 우리의 나약함을 절실히 느끼면서 우리는 주님 앞에 엎드렸다. 나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면서 나는 그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주님께서 능력을 나타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즉시 변화가 일어났다. 그의 얼굴에 혈색이 되돌아오고 하늘의 빛이 그의 얼굴에 비치었다. 우리는 모두 말할 수 없는 감사로 충만하였다. 이보다 더 현저한 기도의 응답을 일찌기 본 적이 없었다. PM 19.1

    그 날 우리는 어번에서 인쇄된 간행물의 교정을 보러 포트바이런에 가게 되어 있었다. 우리는 백성들에게 진리를 널리 전파하려는 출판 사업을 사단이 방해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였다. 우리는 믿음으로 계속 추진하겠다고 결심하였다. 나의 남편은 교정을 보러 포트바이런에 가겠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를 도와 마구를 채워서 동행하였다. 가는 길에 주님께서 그에게 기력을 더해 주셨다. 그는 인쇄가 다음날 마쳐질 것이므로, 인쇄물을 인수하러 어번으로 오라고 쓰여 있는 쪽지를 교정지와 함께 받았다. PM 19.2

    그날 밤, 우리는 이층에서 자고 있던 어린 에드슨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에 잠을 깼다. 어린 아이는 본포이 자매에게 바싹 달라붙은 채 양손으로 허공을 때리면서 겁에 질린 소리로 “아니야 안 돼”라고 부르짖더니 우리에게로 달라붙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려는 사단의 활동이라고 생각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나의 남편이 주님의 이름으로 악령을 꾸짖자, 에드슨은 본포이 자매의 품에서 조용히 잠들어 밤새도록 편안히 잤다.PM 19.3

    그 다음에 나의 남편이 다시 발병되었다. 그는 몹시 괴로워하였다. 나는 그의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우리의 믿음을 굳건하게 해달라고 주님께 기도하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역사하셨고 또 병을 꾸짖으신 줄로 알았으므로 그분께서 이미 하신 일을 또 해 달라고 간구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오직 그분께 당신의 사업을 계속해 주시기만을 기도하였다. 우리는 이 말만을 반복하였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셔서 역사하셨음을 우리는 의심없이 믿습니다. 주님께서 친히 시작하신 사업을 계속하소서.” 이렇게 우리가 두시간 동안 하나님께 탄원했더니 기도하는 동안 나의 남편은 잠이 들어 아침까지 잘 잤다. 그가 일어났을 때 그는 몹시 허약했지만 우리는 나타난 상황만을 보려고 하지 않았다. PM 20.1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전진하기로 결심하였다. 우리는 그 날 간행물의 창간호를 인수하러 어번에 갈 예정이었다. 우리는 사단이 우리를 방해하는 줄 알았지만 나의 남편은 주님을 신뢰하면서 가기로 작정하였다. 해리스 씨가 마차를 준비해 주었고, 본포이 자매가 우리와 동행하였다. 나의 남편은 부축을 받아야 마차에 올라탈 수 있었지만 그는 마차가 달려갈수록 점점 원기를 회복해 갔다. 마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도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계속 믿음을 행사하면서 평화롭고 즐겁게 갔다. PM 20.2

    우리가 완성된 간행물을 인수하여 마차에 싣고 올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임무를 수행하고 있음을 확실히 실감하였다.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였다. 우리는 사단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힘을 주사 우리는 마침내 승리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귀한 진리가 담긴 큰 인쇄물 뭉치를 가지고 왔다. PM 20.3

    우리 아이는 회복되었고, 사단이 더 이상 그를 괴롭히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늦게까지 일했는데, 어떤 때는 식사하러 자리에 가지도 않았다. 일자리 곁에 빵 조각을 가져다 놓고 일하면서 먹었다. 큰 종이를 접는데 내 힘 이상으로 너무 과로했기 때문에 어깨가 쑤셨으며, 그 통증은 수년간 계속되었다.PM 20.4

    우리는 동부로 여행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우리 아이도 여행할 만큼 다시 회복되었다. 우리는 정기 연락선을 타고 유티카까지 가서 거기서 본포이 자매와 사라 자매와 우리 아이에게 작별을 고하고, 애비 씨가 그들을 자기집으로 데려가는 동안 우리는 동부로 향하였다. 애정의 줄로 우리와 단단히 맺어진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은 우리에게 큰 희생이 아닐 수 없었다. 특별히 우리의 마음은 그의 생명이 여러 번 위기에 처했던 사랑하는 어린 에드슨에게 집착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우리는 버몬트 주 수톤에 가서 집회를 열었다. PM 21.1

    리뷰 앤드 헤랄드 ― 1850년 11월에 우리는 메인 주 파리스에서 간행물을 발행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지면을 증면했으며, 간행물의 명칭도 현재 사용하는 대로 애드벤트 리뷰 앤드 쌔배스 헤랄드로 변경하였다. 우리는 A 씨의 집에 유숙하였다. 우리는 간행물을 계속 발행하기 위해 즐겨 궁핍하게 살았다. 이 사업의 동조자들은 얼마 되지 않았으며 물질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가난과 낙담과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할 일이 많아서 흔히 자정까지, 심지어 어떤 때는 새벽 두세 시까지 앉아서 교정지를 읽었다. PM 21.2

    과로, 걱정, 고민, 적절하고 영양가 있는 음식의 부족, 긴 여행 동안 추위를 당하는 것 등 이 모든 것들은 나의 남편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여서 그는 무거운 짐에 눌려 쓰러지고 말았다. 그는 너무 허약해져서 인쇄소까지 걸어갈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극도로 시련을 받았다. 우리는 즐겨 빈곤과 격무와 고통을 감수했지만 우리의 본뜻은 오해되고 불신과 시기를 받곤 하였다.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고생하건만 그들 중에서 우리의 노고를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PM 21.3

    우리에게는 괴로운 일이 너무도 많아서 잠자거나 쉴 수가 없었다. 수면을 취하여 심신을 새롭게 해야 할 시간을, 우리는 시기심 때문에 야기된 긴 편지의 회답을 쓰는 데 사용하였다. 다른 사람들은 곤히 잠잘 때에 우리는 고민의 눈물을 흘리며 주님 앞에 심령을 토로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마침내 나의 남편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보, 더 이상 분투해 봤자 소용없겠소. 이 모든 것이 나를 짓부수어서 곧 무덤으로 끌어 갈 것이오. 나는 더 이상 밀고 나갈 수 없소. 나는 간행물을 더 이상 출판하지 않겠다는 광고 원고를 썼소.” 그가 그 원고를 인쇄소에 전달하러 문을 나설 때 나는 기절하고 말았다. 그는 돌아와서 나를 위해 기도하였다. 그의 기도의 응답으로 나는 의식을 회복하였다.PM 21.4

    다음날 아침, 가정 예배를 드릴 때 나는 이상을 보게 되었는데, 이상중에서 이 문제에 대한 지시를 받았다. 나는 나의 남편이 결코 간행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왜냐하면, 사단이 그의 대리자들을 총동원하여 나의 남편이 그와 같은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가 출판 사업을 계속해야 하며 주님께서 우리를 붙들어 주실 것을 보았다. PM 22.1

    우리는 곧 여러 주에서 집회를 열어 달라는 초청을 받고,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과 코네티컷 주 로키힐과 뉴욕 주의 캠든과 웨스트밀턴에서 열리는 특별 집회에 참석하기로 결심하였다. 이 집회들은 모두 힘이 드는 집회였지만 각처에 산재한 우리의 신자들에게 아주 유익한 집회였다. PM 22.2

    뉴욕 주 사라토가 스프링즈에서 ― 우리는 사라토가 스프링즈에서 출판 사업을 정착시키기까지 볼스턴스파에 수주일간 머물렀다. 우리는 집을 하나 세 얻어놓고, 스티픈 벨든 씨 부부와 그 때에 메인 주에 남아서 어린 에드슨을 보살피고 있던 본포이 자매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으며, 빌린 가재 도구들을 가지고 살림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나의 남편은 애드벤트 리뷰 앤드 쌔배스 헤랄드 제2호를 출판하였다. PM 22.3

    지금은 주 안에서 잠자고 있는 애니 스미드 자매가 우리의 일을 도우며 함께 살러 왔다. 그녀의 조력은 아주 요긴하였다. 나의 남편은 이 때의 느낌을 1852년 2월 20일에 하우랜드 씨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전에 없이 건강합니다. 나는 여행하는 일과 출판 사업을 돌보는 일을 오래 감당할 수 없습니다. 수요일 밤에 우리는 리뷰 앤드 헤랄드 제12호를 접고 포장하느라 새벽 두 시까지 일하고 자리에 누웠지만 나는 기침을 하느라고 아침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사업은 영광스럽게 번창하고 있습니다. 아마 주님께서는 내가 더 이상 필요치 않으실 것이므로 나를 무덤에서 쉬게 하실지 모릅니다. 나는 인쇄물을 내는 일을 면하기를 원합니다. 나는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것을 수호해 왔습니다. 이제는 이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만일 이것을 인수할 만한 사람을 찾을 수 있으면 나는 홀가분하게 인계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주님이시여, 길을 제시해 주소서.”PM 22.4

    로체스터에서 역경에 직면함* ― 우리는 1852년 4월, 가장 절망적인 상황하에서 뉴욕 주 로체스터로 이주하였다. 매 걸음마다 우리는 믿음으로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우리는 아직도 가난에 쪼들려서 최대한도로 절약하고 극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1852년 4월 16일에 하우랜드 씨 가족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PM 23.1

    “우리는 이제 겨우 로체스터에 정착하였습니다. 우리는 일년에 175불 하는 낡은 집에 세들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사무실 세를 일 년에 50불을 더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당신이 이 곳에 오셔서 우리의 가구들을 둘러본다면 웃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25센트씩 주고 헌 침대를 두 개 샀습니다. 나의 남편은 헌 의자 여섯 개를 1불에 사 왔는데 같은 것이라곤 한개도 없었습니다. 그는 또 62센트를 주고, 앉는 부분이 떨어져 나간 헌 의자 네 개를 더 사 왔습니다. 뼈대는 튼튼했으므로 나는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 앉을깨를 만들었습니다. PM 23.2

    버터는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하고, 감자도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버터 대신에 소스를 사용하고, 감자 대신에 순무를 먹습니다. 우리는 처음 식사를, 두 개의 빈 밀가루 통 위를 가로지른 선반 위에 차려 놓고 먹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업이 발전되기만 한다면, 우리는 빈곤마저도 즐겨 참고 견딜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손이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셨다고 믿습니다. 일할 밭은 넓은데 일꾼이 적습니다. 지난 안식일 집회는 훌륭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임재로써 우리의 마음을 상쾌하게 해주셨습니다.” …PM 23.3

    우리는 로체스터에서 많은 번민과 절망을 무릅쓰고 계속 힘써 일하였다. 콜레라가 그 도시에 퍼졌다. 병마가 만연하는 동안, 죽은 사람을 싣고 마운트호프 공동 묘지로 가는 마차의 덜커덩거리는 소리가 밤새도록 들렸다….PM 24.1

    뉴잉글랜드 지방으로 나아감 ― 우리는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메인 주 뱅골에 이르기까지 두 달간의 여행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버몬트에 있는 형제들이 희사한 챨리라는 좋은 말과 함께 포장 마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PM 24.2

    우리 앞에는 이틀 동안 가야 할 길이 약 100마일 가량 남았지만,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을 믿었다. *…PM 24.3

    주께서는 우리가 버몬트로 향하는 길에도 크게 축복하셨다. 나의 남편에게는 걱정거리와 할 일이 많았다. 각처에서 열리는 집회에서 대부분의 설교시간을 담당하였으며, 책도 팔고 간행물의 보급을 위하여도 힘써 일하였다. 한 곳에서 집회를 마치면 다른 곳으로 길을 재촉하였다. 점심 때가 되면, 길가에 말을 세워 말에게 먹이를 주고 우리도 점심을 먹었다. 그러고는 나의 남편은 도시락 뚜껑 위에나 모자 위에 종이를 대고 리뷰 지와 인스트럭터지의 기사 원고를 썼다 ― 엘렌G.화잇 자서전, 128-137.*PM 24.4

    출판의 책임이 교회로 넘어감 ― 로체스터*에서 이주하기 이전에 나의 남편이 몹시 쇠약하게 되었을 때, 그는 출판 사업의 책임을 면하기를 소원하였다. 그는 교회가 그 사업을 맡아서 출판위원회를 구성하여 사업을 관장하게 하고 이 사업에 종사하는 어떤 사람도 자신의 노동의 대가 이상의 어떤 재정적 이익도 얻지 못하도록 하라고 제안하였다. PM 24.5

    이 문제에 대하여 누차 그들의 관심을 환기시켰지만 교우들은 이에 관하여 1861년까지는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때까지 나의 남편이 출판사의 법적인 소유주요 단독 경영주였다. 그는 활동적인 동역자들의 신임을 받아왔는데, 그들은 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출판 사업을 확장하기 위하여 그들이 때때로 기탁한 자금을 관리하도록 그에게 맡겼다. 그러나 비록 그가 출판사는 실질적으로 교회의 소유라는 사실을 리뷰 지의 기사를 통하여 누차 천명했다 하더라도, 아직 그만이 유일한 법적 경영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원수들은 이 점을 이용하여 모든 억측을 발설함으로 그를 중상하고 사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일에 갖은 노력을 다 기울였다. 이런 상황하에서 그는 교회의 조직 문제를 창도하였으며, 그 결과 미시간 주 법률에 따라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출판협회가 1861년 봄에 설립되었다 ― 엘렌G.화잇 자서전, 155.PM 25.1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말할 수 있다!” ― 나의 만년의 생애는 우리 가운데 세워진 많은 사업체들과 깊은 연관을 맺고 있으며, 기관들에 나의 필생의 사업이 긴밀히 혼합되어 있다. 이런 기관들을 설립하기 위하여 나와 나의 남편은 말과 글로 크게 활약하였다. 이런 활동과 여러 해 동안 분주히 활약한 경험들을 간략하게 언급하려 해도 본 약전의 한계를 훨씬 초월하게 될 것이다. 이 사업을 방해하고 일꾼들을 넘어뜨리기 위한 사단의 활동은 그치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업과 당신의 종들을 항상 돌보셨다. PM 25.2

    우리가 현 위치에 이르기까지 한걸음 한걸음씩 전진하며 여행한 우리의 과거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말할 수 있다. 주께서 행하신 역사를 바라볼 때, 나는 경탄과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확신으로 충만해진다. 우리는 주께서 우리를 인도해 오신 길과 우리의 과거 역사를 통하여 주신 그분의 가르침을 잊어버리는 것 외에는 미래를 위하여 두려워할 것이 전혀 없다 ― 엘렌G.화잇 자서전, 183, 184. PM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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