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

각 시대의 대쟁투

 - Contents
  • Results
  • Related
  • Featured
No results found for: "".
  • Weighted Relevancy
  • Content Sequence
  • Relevancy
  • Earliest First
  • Latest First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

    신앙의 포기냐, 죽음이냐

    콘스탄스 성에 도착하자, 후스에게는 완전한 자유가 허락되었다. 황제의 통행권에는 다시 법왕의 개인적인 보증이 첨부되었다. 그러나 이 엄숙하게 반복된 보증도 무시되고, 얼마 후에 그 개혁자는 법왕과 추기경들의 명령으로 체포되었다. 그는 곧 불결하고 음침한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후에 그는 라인 강 건너편에 있는 튼튼한 성안으로 이송되어 죄수로 수감되었다. 이러한 법왕의 배반은 법왕 자신에게도 유익이 되지 못하였으며, 오래지 아니하여 그 법왕도 또한 그 동일한 장소에 갇히게 되었다 (Bonnechose, vol.1, pp.247). 그는 회의석상에서 살인, 성직 매매, 간음, 그 외에도 말할 수 없이 더러운 죄악을 범한 것이 밝혀졌다. 그리하여 그는 회의의 선고로 삼층 면류관을 박탈당하고, 동시에 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리고 참칭 법왕들도 폐위당하고 새로운 법왕이 선정되었다. GC 106.2

    후스가 개혁을 요구하며 신부들을 비난해 왔던 죄들보다 더 큰 죄를 법왕 자신이 범했지만, 법왕을 파면시킨 바로 그 동일한 회의는 이제 이 개혁자를 처치해 버리기로 하였다. 후스의 투옥은 보헤미아 사람들의 큰 분노를 일으켰다. 유력한 귀족들이 대회의 석상에서 이러한 횡포한 행위에 대하여 이의 (異議) 를 제기하였다. 자기가 발행한 통행권이 침해당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황제는 후스에 대한 조치에 반대하였다. 그러나 개혁자의 원수들은 악독하고 완고하였다. 그들은 황제의 편견과 그의 공포심과 교회에 대한 그의 열성 등을 들어 황제에게 호소하였다. 그들은 “비록 황제나 국왕으로부터 통행권을 받은 자일지라도 그가 이단이거나 이단의 혐의를 받은 자일 경우에는 그로 더불어 맺은 약속이 이행될 수 없다” (Jacques Lenfant, His-tory of the Council of Constance, vol.1, p.516) 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장황한 이론을 펴놓았다. 그리하여 그들이 득의했다.GC 107.1

    감방의 습기와 불결한 공기 때문에 열병에 걸려서 거의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지만 마침내 후스는 대회의에 끌려나왔다. 그는 무거운 쇠사슬에 매인 채로 황제 앞에 섰다. 이 황제는 일찍이 자기의 명예와 훌륭한 신앙으로 후스를 보호해 주기로 서약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 긴 심문을 통하여 후스는 확고부동하게 진리를 주장하였다. 그는 이제 그 곳에 열석한 교회와 정부의 고관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교권의 부패를 규탄하였다. 자기의 교리를 취소하든지 죽음을 택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그는 순교자의 운명을 수락하였다. GC 107.2

    하나님의 은혜가 그를 붙들었다. 그가 최후의 선고를 받기 전에 있은 고난의 몇 주일 동안에 그에게는 하늘의 평화가 마음에 충만하여졌다. 그는 한 친구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하였다. “나는 옥중에서 내일 사형 선고가 내릴 것을 기다리면서 쇠사슬에 매인 손으로 이 편지를 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우심으로 내세의 귀한 화평 중에서 다시 만나게 될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어느 정도의 자비를 베푸신 것과 내가 당한 시험과 시련 중에서 얼마나 효과적으로 나를 도우셨는가를 알게 될 것이다” (Bonnechose, vol.2, p.67). GC 107.3

    음산한 옥중에서 그는 참된 신앙의 승리를 미리 보았다. 꿈 가운데 그는 자기가 복음을 전하던 프라하의 교회당으로 돌아가서 그가 벽에 그렸던 그리스도의 그림들을 법왕과 주교들이 지워 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광경은 그를 괴롭게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날에 그는 더욱 많은 화가들이 더욱 찬란한 채색으로 더욱 많은 그림들을 그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일을 마치자마자 그 화가들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자 이제는 법왕이든지 감독이든지 와 보라. 그들이 더 이상 다시는 이 그림들을 지우지 못할 것이다’고 부르짖었다. 개혁자는 그가 꾼 꿈에 관하여 ‘나는 그리스도의 상 (像) 을 결단코 지워 버릴 수 없다는 것을 확신한다. 그들은 그것을 소멸시켜 버리고자 했지만 나보다 훨씬 더 유력한 전도자들로 말미암아 그것은 모든 사람의 마음에 새롭게 그려질 것이다’고 말하였다” (D’Aubigne, b.1, ch.6).GC 108.1

    Larger font
    Smaller font
    Copy
    Print
    Cont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