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엘리야는 그릿 시내 곁에 있는 산중에 숨어 있었다. 그 곳에서 그는 여러 달 동안 기적적으로 음식을 공급받았다. 그 후 계속된 한발로 시내가 마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에게 이방 나라에서 피할 곳을 찾도록 명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신약시대에는 사렙다로 알려졌음)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 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고 하셨다. PK 129.1
이 여인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하나님의 선민이 누리는 특권과 축복을 일찍이 누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고 자기의 길에 비추이는 모든 빛을 따라 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 땅에 엘리야를 위하여 안전한 곳이 없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 여인에게 보내어 그의 집에서 피신하게 하셨다. PK 129.2
“저가 일어나 사르밧으로 가서 성문에 이를 때에 한 과부가 그곳에서 나뭇가지를 줍는지라 이에 불러 가로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저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저를 불러 가로되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하였다. PK 130.1
이 가난에 시달린 집에 심한 기근이 밀어닥쳐 비참하게도 하잘것없는 음식마저도 끊어질 지경이었다. 그 과부가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두려움에 처해 있던 바로 그날에 엘리야가 옴으로 자기의 필요를 공급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그 여인의 신앙이 최대의 시험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무서운 궁지에서라도 그 여인은 마지막 떡 한 조각을 나누어 먹자는 낯선 사람의 요구에 응함으로써 그의 신앙을 증명하였다. PK 130.2
과부는 음식과 물을 달라는 엘리야의 요구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오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 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 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고 대답하였다. 엘리야는 여인에게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말하였다. PK 130.3
이보다 더 큰 신앙의 시험을 요구할 수 없었다. 과부는 이제까지 모든 나그네를 친절하고 너그럽게 접대하였다. 이제 자신과 아이에게 이르러 올 고통을 생각지 아니하고 자기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시는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여 “엘리야의 말대로” 함으로 그 여인은 이 손님을 친절히 대접하라는 최고의 시험에 응했다. PK 130.4
이 페니키아 여인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나타낸 후대는 놀라웠으며 그의 신앙과 관용은 놀라운 보상을 받았다.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PK 131.1
“이 일 후에 그 집 주모 되는 여인의 아들이 병들어 증세가 심히 위중하다가 숨이 끊어진지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이 나로 더불어 무슨 상관이 있기로 내 죄를 생각나게 하고 또 내 아들을 죽게 하려고 내게 오셨나이까” PK 131.2
“엘리야가 저에게 그 아들을 달라 하여 그를 그 여인의 품에서 취하여 안고 자기의 거처하는 다락에 올라가서 자기 침상에 누이고…그 아이 위에 몸을 세 번 펴서 엎드리고 여호와께 부르짖”으니, “여호와께서 엘리야의 소리를 들으시므로 그 아이의 혼이 몸으로 돌아오고 살아난지라.” PK 131.3
“엘리야가 그 아이를 안고 다락에서 방으로 내려가서 그 어미에게 주며 이르되 보라 네 아들이 살았느니라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PK 131.4
사렙다 과부는 자기의 적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나누어 주었고 그 보답으로 그의 생명과 아들의 생명이 보존되었다. 시련과 빈곤의 때에 자기보다 더 가난한 자들에게 동정과 도움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큰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변치 않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은 지금도 엘리야의 시대보다 적어지지 않았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마 10:41)라는 약속은 지금도 옛날 우리 구주께서 말씀하시던 때와 똑같이 확실하다. PK 131.5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히 13:2). 이 말씀은 시간이 흐른다 해도 그 힘이 조금도 약해지지 않는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계속 당신의 자녀들의 길에 불행 중에 축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두시며 이 기회를 선용하는 자들은 큰 기쁨을 발견하게 된다.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8:10, 11). PK 132.1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당신의 충실한 종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고 말씀하신다. 그분의 이름으로 나타낸 친절한 행위는 인정을 받지 못하거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가족 중에 가장 약하고 가장 낮은 자들까지도 똑같이 친절하게 인정하신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 곧 신앙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에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말씀하신다. PK 132.2
엘리야는 오랜 한발과 기근의 세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우상숭배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와 충성하게 되기를 열심히 기도하였다. 여호와의 손이 형벌 받는 땅을 무겁게 누르고 있는 동안 선지자는 끈기 있게 기다렸다. 사방에 고통과 궁핍이 증가하고 있는 흔적들을 바라볼 때에 그의 마음은 슬픔으로 찢어지는 듯이 괴로웠다. 그리하여 그는 빨리 개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몹시 갈망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에 따라 일하고 계셨다. 그러므로 당신의 종이 할 수 있는 일은 믿음으로 기도하면서 결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PK 133.1
아합 시대에 성행한 배도는 여러 해 동안의 행악의 결과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해마다 한걸음 한걸음씩 의의 길에서 떠나가고 있었다. 여러 세대에 걸쳐서 그들은 바른길로 행하기를 거절하였고 마침내 거의 대다수의 백성들이 스스로 흑암의 권세의 지배에 복종하기에 이르렀다. PK 133.2
다윗왕의 통치하에서 이스라엘이 매일 매일에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여야 함을 인정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즐거이 연합하던 때로부터 약 일세기가 지나갔다. 그 때에 그들이 노래하던 찬탄의 말을 들어보라. PK 133.3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니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시 65:5, 8~13)
그 때에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땅의 기초를 두”신 분으로 인정하였고 그들의 신앙을 노래로 표현하였다. PK 134.1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레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시 104:5~9) PK 134.2
땅과 바다와 하늘에 있는 자연의 요소들이 한계를 지키는 것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강한 능력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요소들을 당신의 피조물들의 행복을 위하여 사용하신다. “여호와께서…아름다운 보고를 열어”,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인간의 손의 “모든 일에 복을”(신 28:12) 아낌없이 주신다. PK 134.3
“여호와께서 샘으로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들의 각 짐승에게 마시우시니
들 나귀들도 해갈하며
공중의 새들이 그 가에서 깃들이며
나뭇가지 사이에서 소리를 발하는도다…
저가 가축을 위한 풀과
사람의 소용을 위한 채소를 자라게 하시며
땅에서 식물이 나게 하시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와
사람의 얼굴을 윤택케 하는 기름과
사람의 마음을 힘있게 하는 양식을 주셨도다.”
“여호와여 주의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저희를 다 지으셨으니
주의 부요가 땅에 가득하니이다
저기 크고 넓은 바다가 있고
그 속에 동물
곧 대소 생물이 무수하니이다
이것들이 다 주께서
때를 따라 식물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나이다.” (시 104:10~15, 24~28) PK 135.1
이스라엘은 기뻐할 만한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주께서 그들을 인도해 들이신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광야에서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가 부족해서 고통을 당할 필요가 결코 없는 나라로 그들을 인도하실 것을 보증하셨다. 그분께서는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 PK 135.2
풍족한 비에 대한 약속은 순종을 조건으로 주어졌다. 여호와께서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육축을 위하여 들의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PK 135.3
여호와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이렇게 권고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삼가라 두렵건대 마음에 미혹하여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그것에게 절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하늘을 닫아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땅으로 소산을 내지 않게 하시므로 너희가 여호와의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속히 멸망할까 하노라”(신 11:10~17). PK 136.1
이스라엘은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서 필경 너를 멸하리라”(신 28:15, 23, 24)는 경고를 받았었다. PK 136.2
고대 이스라엘에게 보내신 여호와의 현명하신 권고 가운데 다음의 것들이 있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택하신 백성에게 이렇게 명하셨다. “너희는 나의 이 말을 너희 마음과 뜻에 두고 또 그것으로 너희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고 너희 미간에 붙여 표를 삼으며 또 그것을 너희의 자녀에게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하”(신 11:18, 19)라. 이 명령들은 명백하였으나 여러 세기를 지남에 따라 다음 세대들은 그들의 복리를 위하여 만들어진 조항들을 잊어버렸고 배도의 파멸적인 감화가 하나님의 은혜의 울타리를 휩쓸어 버릴 것 같았다. PK 136.3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제 당신의 백성에게 가장 엄한 형벌을 내리고 계셨다. 엘리야의 예언은 무섭게 성취되어 가고 있었다. 삼년 동안 모든 성읍과 나라들을 차례로 뒤지며 이 재난의 사자를 찾았다. 많은 통치자들은 아합의 명령에 따라 저희 영토 안에서는 이상한 선지자를 발견할 수 없었다고 체면상의 맹세를 하였다. 그러나 수색하는 일은 계속되었으니 이는 이세벨과 바알의 선지자들이 앙심을 품고 엘리야를 몹시 미워하여 저희 힘이 미치는 한 그를 잡으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오지 아니하였다. PK 137.1
마침내 “많은 날을 지내고”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고 하셨다. PK 137.2
그 명령에 순종하여 “엘리야가 아합에게 보이려”고 갔다. 선지자가 사마리아로 향하여 출발하던 바로 그 시간에 아합은 궁내 대신 오바댜에게 굶주린 양떼와 소떼를 위하여 꼴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니 물 샘과 시내를 철저히 찾아보자고 제의하였다. 왕궁에서까지도 오래 계속된 한발의 결과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가족들의 앞날을 크게 염려한 왕은 몸소 그의 종과 함께 꼴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찾아보기로 결심하였다. “두 사람이 두루 다닐 땅을 나누어 아합은 홀로 이 길로 가고 오바댜는 홀로 저 길로 가니라.” PK 137.3
“오바댜가 길에 있을 때에 엘리야가 저를 만난지라 저가 알아보고 엎드려 말하되 내 주 엘리야여 당신이시니이까” 하였다. PK 138.1
이스라엘의 배도의 기간에 오바댜는 하나님께 충성하였다. 그의 주인은 왕이었지만 왕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심을 돌이킬 수 없었다. 이제 오바댜는 엘리야에게서 한 가지 사명을 받았다.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가서 네 주인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고 말하였다. PK 138.2
크게 두려워한 오바댜는 “내가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당신이 당신의 종을 아합의 손에 붙여 죽이게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부르짖었다. 이와 같은 기별을 아합에게 전하는 것은 분명히 죽음을 초래하는 것이었다. 오바댜는 선지자에게 설명하기를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주께서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찾지 아니한 족속이나 나라가 없었는데 저희가 말하기를 엘리야가 없다 하면 그 나라와 족속으로 당신을 보지 못하였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거늘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인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나 내가 당신을 떠나간 후에 여호와의 신이 나의 알지 못하는 곳으로 당신을 이끌어 가시리니 내가 가서 아합에게 고하였다가 저가 당신을 찾지 못하면 내가 죽임을 당하리”라고 하였다. PK 138.3
오바댜는 선지자에게 자기를 가라고 권하지 말도록 간절히 호소하였다. 오바댜는 “당신의 종은 어려서부터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이제 당신의 말씀이 가서 네 주에게 고하기를 엘리야가 여기 있다 하라 하시니 그리하면 저가 나를 죽이리이다”고 역설하였다. PK 139.1
엘리야는 오바댜에게 엄숙한 맹세로 그의 심부름이 헛되지 않게 되리라는 약속을 하였다. 엘리야는 “내가 모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르켜 맹세하노니 내가 오늘날 아합에게 보이리라”고 선언하였다. 이와 같은 보증을 받고 “오바댜는 가서 아합을 만나 고하”였다. PK 139.2
왕은 공포와 놀라움으로 그가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사람 곧 그가 그처럼 끊임없이 찾던 사람에게서 온 기별을 들었다. 그는 엘리야가 그의 생명을 위협하기 위해 만나자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대하여 다른 재앙을 말하려는 것일까? 왕의 마음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그는 여로보암의 손이 마른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합은 소환(召喚)에 순종하지 않을 수도 없었고 손을 들어 하나님의 사자를 감히 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전전 긍긍하던 왕은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 PK 139.3
왕과 선지자는 마주 대면하였다. 비록 아합이 격렬한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었으나 엘리야의 앞에서는 기가 꺾이고 무력해진 것처럼 보였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고 하는 그의 더듬거리는 첫마디에서 그는 무의식중에 그의 마음속 깊이 간직한 감정을 나타내었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하늘이 놋처럼 굳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땅 위에 내리고 있는 중한 형벌의 책임을 선지자에게 돌리려고 하였다. PK 139.4
의의 길에서 떠난 분명한 결과로 이르러 온 재난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은 범죄자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사단의 권세 아래 자신을 두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처럼 사물을 보지 못한다. 진리의 거울이 저희 앞에 걸릴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저희를 적대시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가장 신랄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느낀다 PK 139.5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아합 앞에 선 엘리야는 자신을 변명하거나 아첨하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한발이 거의 끝났다는 희소식으로 왕의 분노를 피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는 사과해야할 일이 없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의분과 열심이 있는 엘리야는 아합의 비난을 되받아 넘겨서 이스라엘에게 무서운 재난을 가져온 것은 그와 그의 조상의 죄라고 두려움 없이 선언하였다. 엘리야는 담대하게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을 좇았음이라”고 주장하였다. PK 140.1
오늘날도 단호한 책망의 음성이 필요하나니 이는 통탄할 죄악으로 인하여 백성들이 하나님에게서 떠난 까닭이다. 불신은 신속히 퍼지고 있다. 무수한 사람들이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한다. 청중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부드러운 설교가 너무나 자주 행해지고 있으며 이러한 설교들은 지속적인 감화를 끼치지 못한다. 나팔은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는다. 사람들은 분명하고 날카로운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을 찢지 아니한다. PK 140.2
자기들의 진정한 감정을 말로 표현한다면, 뭐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가 있는가? 라고 말할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또한 왜 침례 요한이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눅 3:7)고 말할 필요가 있었는가? 라고 질문한다. 왜 그는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와 사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해서 헤로디아의 분노를 살 필요가 있었는가? 그리스도의 전주자(前走者)는 그의 직설적인 말로 인해 자신의 생명을 잃었다. 왜 그는 죄악 중에 사는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고 행동할 수 없었을까? PK 140.3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실한 수호자로 서야 할 사람들이 그렇게 주장해 왔다. 그리하여 정책이 충실을 대신하고 죄는 책망을 받지 않은 채 지나간다. 언제 충실한 견책의 음성이 다시 한 번 교회 안에서 들리게 될까? PK 141.1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 나단이 다윗에게 말한 것과 같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한 말을 오늘날 설교단에서 거의 들어 볼 수 없고 공공의 정기 간행물에서 찾아 볼 수 없다. 이러한 말이 그처럼 드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사람들 중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많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주의 사자들은 인정을 받으려는 욕망과 인간들을 즐겁게 하려는 야망으로 진리를 말하지 못한 죄를 회개하기 전에는 그들의 노력에 결과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 것이다. PK 141.2
하나님께서 평안을 말씀하시지 않으신 때에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부르짖는 목사들 곧,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목사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희의 마음을 철저히 낮추고 그들의 불성실과 도덕적 용기의 부족에 대하여 용서를 구해야 할 것이다. 저희에게 맡겨진 기별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요 저희가 방종과 안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참 사랑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첫째로 삼는다. 이러한 사랑을 가진 자들은 명백하게 말함으로써 이르러 오는 불유쾌한 결과를 피하기 위하여 진실을 속이지 아니할 것이다.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들은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신 말씀을 말할 것이며 악을 변명하거나 핑계하지 않을 것이다. PK 141.3
모든 목사들은 자신의 직무의 신성함과 자신의 사업의 거룩함을 깨닫고 엘리야가 나타낸 용기를 보여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목사들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사자로서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그들은 “오래 참음…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딤후 4:2)여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늘의 오묘를 맡은 청지기로서, 순종하는 자들을 격려하고 불순종하는 자들을 경고해야 한다. 그들은 세속적인 정책을 중시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라고 명하신 길에서 결코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구름같은 증인들에게 둘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말을 하지 말고 세상 군주들보다 더 크신 분께서 그들에게 말하고 명하신 말을 해야 한다. 그들의 기별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나단과 침례 요한 같은 사람을 부르신다. 결과에 개의치 않고 당신의 기별을 충실히 전할 사람, 비록 그것이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희생하도록 요구할지라도 담대히 진리를 말할 사람을 부르신다. PK 141.4
하나님께서는 힘과 용기와 모든 감화를 필요로 하는 위기의 때에 의를 위하여 굳게 서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쓰실 수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대항하여 충실히 싸우고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적할 자들을 부르신다. 이와 같은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 25:23)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PK 1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