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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상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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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누가복음 11장 4절)

    예수께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해 줄 때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신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는 것은 그분의 사랑이며, 이 사랑에 마음이 감동되면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MB 113.2

    예수께서는 주의 기도를 마치신 후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고 부언하셨다. 용서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자비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를 끊어 버리게 된다. 우리는 우리에게 해를 끼친 자들이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한 그들을 용서해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물론, 회개와 고백으로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도리이긴 하나, 우리는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자들이 그 실수를 고백하든지 하지 않든지 간에 그들에 대하여 긍휼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그들이 우리에게 아무리 심한 상처를 줄지라도, 불만을 품거나 상처를 받은 자신을 동정하지 말며,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용서받으려 하는 것처럼 우리에게 잘못한 모든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한다.MB 113.3

    그러나 용서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널리 용서하시리라”는 약속을 주시면서, 마치 그 약속의 뜻이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높은 것처럼 이렇게 부언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장 7~9절).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면하게 해 주는 사법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한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원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편 10절) 하고 기도했을 때 용서의 참 뜻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편 103편 12절)라고 말한다. MB 114.1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 자신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우리에게 나타내고 우리를 당신께로 이끌기 위하여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을 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죄악의 짐을 담당하시고,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다. 그래서 그분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에베소서 4장 32절)고 말씀하신다. 거룩한 생명이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대 안에 거하시며 그대를 통하여, 소망 없는 자들에게 소망을 주고 죄로 병든 마음에 하늘의 평화를 가져다줄 천국의 사랑을 나타내시게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 처음부터 가져야 할 조건은 그분에게서 자비를 받고 그분의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이다.MB 114.2

    하나님의 용서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나누어주기 위하여 우리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것 하나는, 그분께서 우리에 대하여 가지신 사랑을 깨닫고 믿는 것이다(요한일서 4장 16절).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그 사랑을 분별하지 못하게 하고자 그가 할 수 있는 온갖 기만을 부리며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리의 실수와 죄가 너무 크기 때문에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를 축복하고 구원해 주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우리를 유도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연약한 것 외에는 볼 것과 하나님께 내어놓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사단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곧 우리의 품성의 결함을 고칠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할 때, 사단은 다음과 같이 속삭일 것이다. 그대가 기도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다. 그대는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단 말인가?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양심을 더럽힌 일이 없단 말인가? 그러나 우리는 사단에게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7절)라고 말할 수 있다. 죄를 범하여 기도할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바로 기도해야 할 때이다. 부끄럽고 매우 비참한 생각이 들지 모르지만 기도하고 믿어야 한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디모데전서 1장 15절). 용서 곧 하나님과의 화목은 우리의 행위에 대한 상급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죄 많은 인간의 공로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에 근거를 둔 선물로서 주어진다. MB 115.1

    변명으로 우리의 죄를 감소시키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을 받아야 하며, 그것은 실로 무겁다. 오직 갈바리만이 죄의 무서운 흉악성을 나타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스스로의 죄를 담당해야 한다면, 죄가 우리를 눌러 뭉개 버릴 것이다. 그러나 죄 없는 분께서 우리와 입장을 바꾸셨다. 그렇게 할 책임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요한일서 1장 9절). 당신의 율법에 공의로우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을 의롭게 하시는 분,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진리인가!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미가 7장 18절).MB 11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