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숙한 책임
십일조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분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간수된다. 그것은 그분의 금고에 들어가서 사업에 임하고 있는 복음의 일꾼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속한 부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께서는 오랫동안 도적질을 당해 오셨다. 9T 249.1
어떤 사람들은 불만을 품어오던 중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십일조를 바치지 않을 것이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신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의 처리가 옳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이 하나님께 도적질을 하겠는가? 그대들의 불평을 솔직하고 공공연하게, 올바른 정신으로 당사자들에게 말하라. 일을 바로 잡고 질서 있게 해 달라는 간청을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에서 물러서지는 말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의 불성실이 입증되지 않게 하라. 9T 249.2
말라기서 3장을 주의 깊이 읽고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아 보라. 만일 우리의 교회들이 주님의 말씀 위에 서서 십일조를 그분의 금고에 드리는 데 성실할 것 같으면 더 많은 일꾼들이 목회 사업에 임하도록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고갈된 금고에 대해서 듣지 않았을 것 같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회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기적인 마음들과 손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억제해 두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다른 분야의 사업을 돕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주님의 금고에는 풍성한 공급이 있었을 것이고, 사실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9T 249.3
하나님의 보유된 자원은 그와 같이 아무렇게나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참견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의 하늘 보화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십일조가 주께서 가야 할 것으로 말씀하신 한 길 외에 다른 여러 길로 전환되므로 사업이 더 이상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다른 분야의 사업을 위한 준비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들이 지원을 받아야 하되, 십일조로부터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셨다. 십일조는 여전히 목회자의 부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새 지역의 개척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상의 목회적인 효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금고에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9T 249.4
목사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등한히 여겨지고 있는 하나의 엄숙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하기는 좋아하지만, 교회들에 대해 개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과 의무에 관한 교훈, 특별히 정직하게 십일조를 내는 일에 관한 교훈이 크게 필요하다. 우리의 목사들이 그들의 활동에 대한 보수를 즉시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곳간에 일꾼들을 유지할 양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성실하도록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전반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금고에는 주님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자금이 고갈될 것이다. 9T 250.1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감독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이 일이 그에게 달갑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다른 어떤 사람이 하도록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충성된 교역자가 아니다. 그는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대한 도적질이라고 백성을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9) 고 말하신다. 말씀과 교훈으로 봉사하는 자가 백성들에게 이 저주가 초래되는 길을 그들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하는 의무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교인은 정직한 십일조를 내는 데 성실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9T 250.2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9T 251.1
나는 나의 형제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참 안식일의 준수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섬기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잠들어서 무관심하게 되어 있는 자들을 깨우도록 하자. 우리는 거룩하게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두드러진 특성들을 간직하든지 않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과거에 취해 온 것보다 한층 더 진리와 의를 위해 결정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귀중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지키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은 틀림없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축복, 참으로 혹독하게 시험을 받아야 하는 한 백성에게 그처럼 필수적인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과의 언약 관계에서 간직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종교가 우리의 생애에서 지배적인 힘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 크게 욕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되는 그분의 계명에서 돌아서게 되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9T 251.2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내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신 7:9, 10).9T 252.1
이 성경에서 말한 천재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우리의 운명은 영원을 위해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본향에 합당하다는 선고를 받거나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진실하고 성실했던 자들, 갈바리를 기억하고, 진리 편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해 온 자들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반신반의의 봉사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들의 생애를 세상의 방식과 습관에 일치되게 허용해 온 자들은,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 는 슬픈 말을 듣게 될 것이다. 9T 2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