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필요
세상이 동정을 필요로 하고,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의 제자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는 한편, 하나님의 백성이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고, 기도에 효력이 있게 하고 거룩한 모본을 닮은 품성을 계발할 기회를 필요로 하고 있는 점에서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6T 261.1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과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두신 것은 이런 기회들을 제공하심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려는 것만큼 돌봄을 입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교양과 품성을 주시면서 찌끼를 제거하시고 금을 순결케 하신다. 6T 261.2
주님께서는 우리의 협조 없이도 일을 진행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돈이나 시간이나 노력에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분이 보시기에 교회는 매우 귀중하다. 그것은 그분의 보화가 담긴 상자이며, 그분의 양떼가 들어 있는 우리이며, 그분께서는 그것이 점이나 흠이나 아무 다른 것이 없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교회를 바라보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일하도록 기회를 주신 이유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우리의 사랑과 충성의 표로 받으신다. 6T 261.3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두심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나타내도록 시험하신다. 우리는 안전하게 원칙을 이탈할 수 없으며, 우리는 정의를 범할 수 없으며, 우리는 자비를 무시할 수 없다. 형제가 망해 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냥 지나쳐서 다른편으로 가서는 안되며, 그를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단호하고 즉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상충되게 일하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우리의 하는 일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행동 중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우리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사상이 우리의 양심에 굳게 정착되어 뿌리가 내리고 견고하게 되어야 한다.6T 261.4
자비와 동정심과 의를 무시하는 사람,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사람, 고통당하는 인류의 필요를 모른 체하는 사람, 친절하지도 예절 바르지도 아니한 사람은 품성 계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와 협력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철필로 비석에 새기듯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정신과 마음의 계발은 우리가 남들을 향해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받은 유익과 특권을 나누어 줌으로 더욱 쉽게 이루어진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것을 다 찾아 먹는 것은 영혼을 핍절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특성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도록 정하신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고자 기다리고 있다. 6T 262.1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분의 사자들을 보내사 그의 백성에게 증거케 하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를 영접하기를 거절한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굴복시키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께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문을 열고 구주를 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는 지나가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은혜의 축복을 주고자 하시나 그들은 받기를 거절한다. 그리스도를 그분 자신의 성전에서 쫓아내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교회에 얼마나 큰 손실인가! 6T 262.2
선한 사업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희생을 통하여 연단이 이루어진다. 이 의무들은 타고난 감정과 성향과 더불어 싸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성취하므로 우리의 품성에 속한 꺼림칙한 특질들을 정복하고, 또 정복하게 된다. 싸움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 받은 자들 중에 들어갈 준비가 이루어진다.6T 262.3
현세적, 영적 축복들은 주인께 받은 것을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들에게 올 것이다. 예수께서는 피곤하고 배고픈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시고자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백성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한 장소를 택하시고, 그들로 앉게 하셨다. 그리고 떡 다섯과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셨다. 배고픈 오천 명의 남자들에다가 여인들과 아이들을 더한 그 큰 무리를 그 적은 것으로 먹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틀림없이 오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축사하시고 제자들의 손에 놓으시고 나누게 하셨다. 그들은 무리에게 주었으며, 음식은 그들의 손에서 불어났다. 무리가 먹은 후에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서 하늘이 주신 양식을 먹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귀한 교훈이 된다. 6T 263.1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종교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우리 교인들은 절실히 실제적 경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극기와 자아 희생을 실천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음에 대한 증거를 세상에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사업은 대리인을 통하여, 즉 그들이 직접 져야 할 짐을 어떤 위원회나 기관에 지움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돈과 시간과 개인적인 노력을 들여 병든 자를 돕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며, 가난한 자를 돕고, 실의에 처한 자를 격려하고, 흑암에 있는 영혼에게 빛을 주며,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의 의무를 깨닫게 함으로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6T 263.2
백성들은 이 때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시하며, 저울질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과 행동 어느 구석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지를 살피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 겸손히, 진지하게 일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가 들어간 모든 도회지와 마을에서 드러난 감화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 일을 부여잡고 매일 그들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에서 작은 사랑의 일을 할 때 그리스도가 그들의 이웃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복음은 공교히 꾸민 이야기나 게으른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산 능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저 상상이나 흥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설교나 신앙 고백이나 신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6T 264.1
사단은 모든 영혼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한다. 그는 실제적 동정이 마음의 순결과 이타심의 시금석임을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의 필요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닫게 하여 고통을 보아도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도록 온갖 애를 쓰고 있다. 그는 사랑과 동정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많은 장애물을 놓을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유다를 망가뜨렸다. 유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였다. 이 면에 있어서 그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유다와 같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다. 유다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동정심이 없다면 우리는 유다가 그리스도밖에 있으므로 사단의 유혹의 노리개가 된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 6T 264.2
우리는 의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범과는 즉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는 태만은 다른 것, 또 다른 것을 위해 문을 열어 급기야는 마음의 원수의 원칙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기심이 함양되면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는 아무 다른 것이 굴복시킬 수 없는, 마구 삼키는 정욕이 된다.6T 2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