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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려뽑은 기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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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 기간 동안에 배운 교훈들

    나는 고통과 신음과 절망 속에서 큰 시련을 겪고 있었으나 이러한 모든 시련 속에서도 나는 황금보다 더 가치 있는 귀중한 경험을 얻었다. 처음에 내가 호주와 뉴질랜드에 있는 교회들을 방문해야겠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었을 때 나는 미국을 떠나 먼 나라를 방문하는 것이 과연 나의 의무일까라는 심각한 생각에 머무르게 되었다. 내가 당하는 고통은 매우 통렬한 것이었다. 잠을 이룰 수 없던 그 많은 밤 시간 동안에 우리가 미국을 향해서 유럽을 떠나게 된 이후로 겪은 모든 경험들을 거듭거듭 반복해서 회상해 보았으며 그것은 근심과 고통과 무거운 책임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었다. 그 때에 나는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고 물어보았다.2SM 240.4

    나는 지난 몇 해 동안의 역사와 주님께서 나에게 하라고 맡기신 사업을 신중히 검토해 보았다. 주님께서는 단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었고 때때로 주님께서는 뚜렷한 방법으로 당신 자신을 나에게 나타내 보이셨으며 과거의 경험에서 내가 불평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오히려 나의 모든 경험을 통해서 귀중한 일들이 황금의 실처럼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해서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셨고 주님께서 친히 나에게 가까이 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며 마치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주셔야 한다는 식으로 하나님께 지시를 내리는 태도를 취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였다. 고통과 절망의 심정이 찾아든 시초에 나에게 불복종의 정신이 있었으나 오래되지 않아 나의 병고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반은 누운 자세로 또 반은 앉은 자세로 하여 불구가 된 손들을 사용할 수 있었으므로 심한 고통 속에서도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다. 나는 이 나라 (호주) 에 온 이래로 이만한 크기의 종이로 1, 600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써 왔다.2SM 241.1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지난 9개월 동안 허다한 밤들을 나는 두 시간 정도 잠을 이룰 수밖에 없었으며 때때로 어두운 절망 가운데 싸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하였으며 하나님께 가까이 나감으로써 감미로운 깊은 위로를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 4:8). “여호와께서 그 기운에 몰려 급히 흐르는 하수같이 오실 것임이로다” (사 59:19) 라고 하신 허락의 말씀이 나에게 성취되었다. 나는 주님 안에 있는 모든 빛 가운데 싸여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신령하게 접근하셨으며 나의 영혼이 하나님 안에 있었으므로 내가 받은 은혜가 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사랑하셨고 나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찬송으로 충만하였다.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딤후 1:12)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 10:13) 는 말씀을 벅찬 가슴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정복자로 나서게 되었고 유리한 입장에 서게 되었다.2SM 241.2

    나는 나의 병고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밝히 파악할 수 없으나 주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임을 아시므로 나의 진실하신 창조주이신 주님께 나의 혼과 몸과 영을 맡길 것이다. “이를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딤후 1:12). 만약 우리들이 더 큰 믿음, 더 큰 사랑, 더 큰 인내 및 하늘 아버지에 대한 더욱 완전한 신뢰심을 갖도록 우리 영혼들을 교육하고 훈련시켰다면 우리들이 이 생애의 투쟁 속에서 날마다 더욱 큰 화평과 행복을 얻을 수 있었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2SM 242.1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예수님의 팔에 안기지 않고 떨어져서 우리들 스스로 애태우고 근심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조용히 기다리며 살피는 그러한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 우리들은 감정적으로 느끼는 무엇이 없는 한 바른길에 서 있지 않다고 생각하며 우리들은 경우에 알맞는 어떤 표징을 계속 찾는다. 그러나 심판의 표준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있는 것이다.2SM 242.2

    믿음으로 행하라

    우리들이 최선의 지식에 따라서 기록된 말씀에 동의할 때 어떤 특별한 만족감을 느끼든 못 느끼든 믿음으로 행하여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를 우리들의 희생 제물로 죽게 하시므로 우리들이 주님을 믿고, 주님 안에 소망을 두며, 추호의 질문이나 의심이 없이 주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도록 그처럼 위대한 사랑의 놀라운 증거들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않을 때 우리들은 하나님께 욕을 돌리게 된다.2SM 242.3

    그대들에게 어떤 뚜렷한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계속해서 예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조용한 기도를 올리고, 주님의 능력을 붙잡으라. 마치 모든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되고 결코 실패함이 없으신 약속의 주님께로부터 응답을 받는 것처럼 즉각 전진하라. 비록 어떤 무거운 감정과 슬픔에 억압된 순간이라도 그대의 마음 가운데 하나님을 향하여 운율 (韻律) 에 맞추어 노래하며 행진하라. 분명히 빛이 이르게 되고 기쁨을 맛보게 되며 안개와 구름이 깨끗이 거두어질 때가 올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것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암영 (暗影) 과 흑암의 압도적인 세력에서 벗어나 주님의 임재에 따르는 밝은 태양 광선을 쪼이게 될 것이다.2SM 242.4

    만약 우리들이 자신의 신앙에 대하여 더욱 많은 표현들을 한다면 우리들이 분명히 누리고 있는 축복들 곧 하나님의 크신 자비, 관용 및 사랑 가운데서 더욱 기뻐하게 되며 우리들은 매일 더욱 큰 능력을 얻게 될 것이다.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세상 부모들이 자기 자식에게 좋은 선물을 주려는 것보다 더욱 기꺼이 성령을 주시려 하신다는 것을 하나님의 황태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확신과 권능의 말씀으로 우리들에게 전해 주시지 않았던가?2SM 243.1

    우리들은 매일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우리 신앙에 부합되는 다소의 감정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지 않으시고 희생 제물을 받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마치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감정과 신앙은 완전히 구분되어야 한다. 신앙은 감정에 의존하여 있지 않다. 우리들은 어떤 느낌이 있든 없든 간에 믿음으로 열렬히 하나님께 호소하고 우리들의 기도에 일치하는 생애를 살아야 한다. 우리들의 보장과 확증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으며 우리가 구한 후에는 의심이 없이 믿어야 한다. “오 하나님, 저는 당신을 찬미하고 또 찬양하나이다. 당신께서는 말씀을 성취하심에 있어서 저를 실망케 하신 적이 없나이다. 당신께서는 저에게 당신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저는 당신의 뜻을 행하기 위하여 당신의 것이 되었나이다.”2SM 243.2

    아브라함이 살핀 것처럼 충실하게 살피지 않을 때 까마귀들이나 먹이를 구하는 어떤 새들이 하나님께 드릴 그대들의 희생 제물과 헌물 위에 내려앉게 된다. 의심을 일으키는 모든 생각을 경계함으로써 어떤 언사로 말미암아 그날의 빛을 잃어버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흑암의 권세들을 떠받드는 모든 말들은 항상 빛을 쫓아버린다. 부활하신 주님의 생명이 매일 우리들에게 나타나야 할 것이다.2SM 243.3

    하늘로 가는 문은 좁고 불편함

    하늘로 가는 우리들의 길은 어떠한가? 모든 유혹적인 편의가 제공되는 그러한 길인가? 아니다. 그 길은 분명히 좁고 불편한 길이다. 그 길은 투쟁과 시련의 길이며 환란과 고통의 길이다. 우리 대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이 싸워야 할 전쟁에 관하여 아무것도 숨겨놓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앞에 지도를 펴 놓으시고 가는 길을 보여 주신다.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 13:24) 고 말씀하셨다. 또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 7:13).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 (요 16:33) 고 말씀하셨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호응하여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할 것이라” (행 14:22) 고 말하였다. 이러한 말씀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실망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2SM 243.4

    모든 허락의 말씀들을 모으라

    모든 은혜의 생명, 모든 약속의 생명, 모든 의식 (儀式) 의 생명 그리고 모든 축복의 생명이 되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실체이시며 영광과 향기가 되시고 생명 자체가 되신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 8:12). 구속 받은 자들이 걷도록 펴놓인 지름길은 절망적인 흑암 속에 싸여 있지 않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로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순례는 실로 외롭고 쓰라린 것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모든 기록된 허락의 말씀들을 한데 모아야 한다. 우리들은 해가 있을 때에 그 말씀들을 반복하고 밤에는 그 말씀들을 명상해야 하며 즐거워해야 한다.2SM 244.1

    “그날에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그 노가 쉬었고 또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지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그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이름을 부르며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 이름이 높다 하라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 시온의 거민아 소리를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사 12:1-6).2SM 244.2

    이 길이야말로 우리들이 여행하고 있고 여호와의 구속 받은 자들이 걸어가야 할 지름길이 아닌가? 이보다 더 훌륭하고 더 안전한 길을 준비할 수 있을까? 아니다,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받은 바 교훈을 실천해 나아가자. 우리들은 피난처로서, 사단의 화살에서 우리들을 막아주는 오른손에 방패처럼 구세주를 바라보자.2SM 244.3

    유혹들은 엄습해 올 것이며 온갖 염려와 암담한 실망이 우리들을 억압할 것이다. 마음과 육신이 실패하려 할 때에 누가 우리들을 영원하신 팔로 껴안아 줄 것인가? 누가 우리들에게 보장과 소망의 말씀을 기억하게 해주실 것인가? 성실과 진실로 구하는 자들에게 풍성한 은혜를 주실 분이 누구인가? 우리를 당신의 의로 입혀주시고 죄에서 구원해 주실 분이 누구이신가? 누구의 빛이 안개와 짙은 구름을 거두어가고 우리들을 당신의 임재의 태양 광선으로 인도할 것인가? 아, 그렇게 하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찬양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 과연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살아 계신 구세주이신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 3:1). 우리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 그리스도는 우리들의 생명이 되신다. 우리들은 주님의 은혜로운 사랑을 힘입어 택함을 입었으며 양자가 되었고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여호와를 존귀하게 받들자. — 서신 7, 1892.2SM 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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