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던 초기 그리스도교회
영국에는 매우 일찍부터 순수한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렸다. 최초의 수세기 동안에 영국인들이 받아들인 복음은 로마교의 배교로 부패되지 않은 복음이었다. 영국의 최초의 교회들이 로마로부터 받은 유일의 선물은 멀리 떨어진 해안에까지 미친 이교 황제들의 박해뿐이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영국에서의 핍박을 피하여 스코틀랜드로 갔다. 그리고 거기서 진리는 마침내 아일랜드에까지 퍼져갔는데, 그 나라들은 모두 이 진리를 환영하였다. GC 62.2
색슨족이 영국을 침략하게 되자, 이교도들이 지배권을 행사하게 되었다. 정복자들은 그들이 정복한 피정복민에게서 배우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산과 광야로 피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빛은 한동안 가려졌으나, 계속 타고 있었다. 일세기 후에 멀리 떨어져 있는 여러 나라에까지 퍼져간 빛은 스코틀랜드에서 밝히 빛났다. 아일랜드로부터 경건한 콜룸바 (Columba) 와 그의 동역자들이 와서 각처에 흩어져 있는 신도들을 적막한 아이오나 섬으로 모았다. 그리하여 그 섬은 그들의 선교 사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전도자들 중에 성경상 안식일을 준수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리하여 이 진리가 사람들에게 소개되었다. 아이오나 섬에 한 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 곳에서부터 스코틀랜드와 영국은 물론이요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에까지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GC 62.3
그러나 로마는 영국을 주시하고, 그것을 자기의 패권 아래 넣으려고 결심하였다. 6세기에 법왕교의 선교사들은 이교도인 색슨족을 개종시키고자 하였다. 그들은 교만한 야만인들의 환심을 사서 수천 명을 로마교의 신앙으로 돌아오게 하였다. 이처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나갈 때 법왕교의 승려들과 개종자들은 순수한 그리스도인들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 양자 간에는 현저한 대조가 나타났다. 전자는 법왕교의 미신과 허세와 교만을 나타내는 반면에 후자는 단순하고 겸손하며, 품성과 신조와 행동 등이 모두 성경과 부합됨을 보여 주었다. 법왕의 사절들은 이 그리스도교회들에게 법왕의 최상권을 인정하라고 강요하였다. 그러나 영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온유한 태도로, 그들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기를 열망하고 있지만 법왕이 교회에서 최상권을 가질 자격이 없으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피차에 대하는 것과 같은 겸손으로 그에게 대할 뿐이라고 대답하였다. 사절들은 로마의 법왕에게 충성을 표시하게 하고자 계속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 겸손한 그리스도인들은 거만한 사절들의 태도에 놀라면서 우리는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주를 인정할 수 없노라고 확고하게 대답하였다. 그러자 법왕교의 정체는 나타났다. 로마교의 지도자는 “너희가 평화를 가져오는 형제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너희는 필경 전쟁을 가져오는 원수를 맞이하고야 말 것이다. 너희가 색슨족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는 일에 우리와 연합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결국 그들에게서 죽음의 매를 맞고야 말 것이다” (J.H.Merle D’Aubigne, History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b.17, ch.2) 라고 말하였다. 이것은 근거 없는 위협이 아니었다. 전쟁과 음모와 기만 등의 온갖 수단이 성경상 신앙을 가진 그 증인들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마침내 영국의 교회들은 파괴되거나 법왕권에 굴복당하고 말았다.GC 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