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왕의 사절 알리안더가 루터를 공격함
루터가 의회에 출두한다는 소식이 보름스에 전해지자, 일반 사람들은 흥분하게 되었다. 이번 사건을 특별히 위임받은 법왕의 사절 알리안더 (Aleander) 는 놀라고 분노하였다. 그는 그 결과가 법왕 측에 불리할 것을 알았다. 법왕이 이미 정죄의 선고를 내린 사건을 심리한다는 것은 가장 높은 법왕의 권위를 모욕하는 일이었다. 더욱이 그는 이 사람의 웅변과 유력한 이론이 많은 영주들을 법왕의 사업으로부터 떠나가게 할 것을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가장 신속한 방법으로, 루터가 보름스에 나타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카알에게 호소하였다. 때마침 루터의 파문을 선고하는 조서가 공포되었고, 법왕의 사절의 제안도 있었으므로 황제는 진심으로 그 일을 수락하였다. 황제는 선후에게 루터가 신앙의 취소를 원하지 않는다면 비텐베르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고 편지하였다.GC 146.2
알리안더는 이 승리로써 만족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로 온 힘과 간계를 다하여 루터를 정죄하고자 애를 썼다. 그는 비상한 집념 아래 제후들과 주교들과 그 밖의 다른 의원들에게 그 문제에 대하여 주의를 환기시키고, 개혁자를 “선동, 반역, 불경건, 참람” 등의 죄로 고소하였다. 그러나 법왕의 사절이 나타낸 격정과 분노는 그가 어떤 정신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너무도 명백하게 드러내었다. “그는 열성과 경건으로보다는 증오와 복수심으로 지배되었다” (D’Aubigne, b.7, ch.1) 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었다. 의회의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도 더욱 루터의 사업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GC 147.1
알리안더는 다시 배가된 열성으로 황제에게 법왕의 칙령을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독일의 법률상으로 이 일을 제후들의 찬동 없이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황제는 마침내 그 사절의 집요한 요구에 못 이겨서 그의 소송 사건을 의회에 제출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날은 교황 사절에게 있어서는 자랑스러운 날이었다. 회중도 대단하였지마는 소송 사건은 더욱더 대단하였다. 알리안더는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며 주인인 로마를 위하여 변호할 것이었다.” 그는 거기에 모인 그리스도교국의 원로들 앞에서 베드로의 권위를 변호할 것이었다. “알리안더는 웅변의 재간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처럼 중대한 시기를 위하여 선 사람이었다. 로마가 비난을 받기 전에 가장 유능한 웅변가가 그렇듯 엄숙한 법정에 나타나서 고소를 한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다” (Wylie, b.6, ch.4). 루터에게 호감을 가진 의원들은 알리안더의 변론의 결과에 대하여 어느 정도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센의 선후는 참석하지 않았으나 자기의 고문과 몇 사람을 참석시켜 법왕의 사절의 연설을 필기하게 하였다. GC 147.2
알리안더는 학문과 웅변의 힘을 모두 발휘하여 진리를 전복시키고자 진력하였다. 그는 루터를 교회와 국가, 산 자와 죽은 자, 성직자와 평신자, 그리스도의 교회와 개인의 원수라고 거듭거듭 고발하였다. “루터의 오류에는 십만 명의 이단을 화형시킬 만한 재료가 넉넉히 있다”고 그는 주장하였다.GC 148.1
결론적으로 그는 개혁주의의 신앙을 고수하는 사람들을 모욕하고자 노력하였다. “루터당이란 무엇인가? 오만한 교사들, 타락한 신부들, 방탕한 승려들, 무지한 변호자들, 부패한 귀족들, 잘못 지도되어 비뚤어진 일반 백성들의 집단들이다. 그러나 가톨릭 당은 수와 능력과 권력 면에서 그들보다 얼마나 우세한가! 이 유명한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하여 무지한 자를 계몽하고, 교만한 자를 경고하고, 요동하는 자를 안정시키고, 약한 자에게 힘을 줄 것이다” (D’Aubigne, b.7, ch.3). GC 148.2